[박재일 칼럼] 권력의지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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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25   |  발행일 2017-01-25 제31면   |  수정 2017-01-25
20170125

“정치 한번 해보시죠. 잘 하실 것 같은데.” “제가 뭘, 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

정치 시즌에 이런저런 자리에서 흔히 듣는 대화다. 누군가 리더십이 있고, 또 공적인 일들에 관심이 있다면 ‘차라리 당신이 해보라’는 덕담성 권유다.

현실정치를 목청 높여 비판하고, 욕을 해대는 이들도 막상 직접 해보라는 말에는 대개 꼬리를 내린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선거란 그 진흙탕에 내가 견딜까, 정치자금은, 가족의 반대는, 종국에는 내가 이길 수 있을까로 고민이 복잡해진다. 물론 스스로 능력이 안된다는 겸양도 깔려있다.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요소가 정치에는 있다. 바로 ‘권력의지’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과 동시에 야심찬 현실정치 투신을 알리며 권력의지를 말했다. “남을 헐뜯어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라면 그런 권력의지는 나에겐 없다. 대신 국민과 국가를 위해 한 몸 불사를 수 있다면 그런 권력의지는 있다.”

반 전 총장의 이 말은 스스로의 약점으로 지목돼온 권력의지 부족을 커버하기 위한 발언이다. 그는 알다시피 반평생 외교관의 길을 걸어왔다. 따뜻한 밥 먹어온 유약한 외교관이 과연 국가적 명운을 건 정치투쟁에서 이겨낼 수 있을까란 의문은 늘 반 전 총장에게 던져져 왔다. 그만큼 권력의지는 정치인에게 중요한 덕목이다.

‘권력의지(Will to power)’, 혹은 ‘권력에의 의지’는 원래 니체가 한 말이다. 역동적인 삶의 의지, 운명을 개척하는 인간을 강조하면서 나온 개념이다. 해석이 어렵다. 후일 나치즘 합리화에 악용된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도덕이 아닌 현실에서의 힘(권력)과 영웅, 초인적 철인과 연계된다.

그런 철학적 개념을 떠나 권력의지는 특히 대권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늘 주제가 된다. 반 전 총장에 앞서 그런 질문이 던져진 대표적 정치인으로 안철수 의원이 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신드롬이 떴다. 출마한다면 당선은 거의 확실시됐지만, 안철수는 박원순에게 양보한다. 주변에서 그는 권력의지가 없다고 평했다. 이어진 2012년 대선에서도 결국 문재인에게 단일후보 자리를 넘겼다. 박약한 권력의지의 문제가 나왔다. 최근 대구에 온 안철수 의원을 만났더니, 자신에 대한 그런 이미지를 보완하겠다는 의지가 역력했다. 그는 지난 탄핵에서 가장 먼저 대통령 하야를 주장했다고 상기시켰고, “저는 지금 정치가 아니라 구국운동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끝까지 승부를 건다는 의미다.

현재 여론조사 1위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도 비슷한 행로를 거쳤다. 그는 초기에는 권력의지가 거의 없어 보였는데, 노무현 후예들의 강력한 밀어붙임에 등장한 감이 없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해야겠다는 의지를 의도적으로 내보인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그는 지역 언론인모임인 아시아포럼에서 “5년 뒤라면 나는 열정을 잃어버릴 것”이라며 이번 대선에서의 의지를 확고히 했다.

상황이 약간 다른 듯하지만, 보수개혁을 들고 나온 유승민 의원의 경우도 유사한 지적을 받기도 했다. 탄핵정국의 난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내세우면 판을 장악할 수 있는데, 왜 머뭇거리느냐는 분석이었다.

2012년 대선에 임박해 박근혜 캠프의 유력 정치인이 사석에서 말했다. “이번에도 지면 박근혜도 내상이 클 것이다.” 패배할 수도 있다는 염려로 들렸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박근혜의 권력의지가 그만큼 강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권력의지는 자신의 운명이든 나라의 운명이든 그걸 개척하고 뚫고 나가는데는 확실히 전제되는 요구조건인 듯 보인다. 한편 그것이 권력욕으로 과도해질 때 나치즘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동체의 불이익과 심지어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 권력은 금단현상을 초래할 만큼 어두운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권력에의 의지’에 동양철학의 중용까지 보태진다면 우리는 진정 플라톤이 꿈꿔온 ‘철인정치’를 맞볼 수 있을 것이란 공상을 해본다. 물론 어디까지나 공상이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현실에서 극히 드물다. 권력의지, 양날의 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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