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나는야 언제나 술래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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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24   |  발행일 2017-01-24 제30면   |  수정 2017-01-24
20170124

제 앞길 가기도 팍팍한 세상
나라 걱정 더해져 체한 느낌
정치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헬조선’ 없앨 계기 마련돼
술래가 행복해야 ‘헤븐조선’


‘가왕’ 조용필의 노래 ‘못 찾겠다 꾀꼬리’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 그 많던 어린 날의 꿈이 숨어버려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매는 술래야 (…).

숨어있는 대상을 찾아야 일단락되는 술래의 운명은 사람을 찾든, 꿈을 찾든, 진실을 찾든 뭘 해도 우선 피곤하다. 여기저기 기웃거려도 보고, 수소문을 하면서 쫓아다녀도 보고, 여기다 싶어 매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꼭꼭 숨어버리면 회한과 함께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그만두고 확 집에 가버릴까, 창피하지만 못 찾겠다고 고백을 할까, 다른 거 하자고 해볼까. 그래도 순둥이 같은 착한 술래는 오늘도 룰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몇년전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쓰일 무렵, 솔직히 좀 불편하고 못마땅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를 지옥에 빗대어 표현하는 사실이 왠지 거북하고 민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몰상식하고 비민주적이며 불공평한 험한 꼴을 자주 당하고 접하다 보면 어느새 자존감과 자신감, 그리고 애국심은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대신, 그 빈자리만큼 적개심과 시니컬한 시각만 똬리를 틀게 되는 모양새다.

입시·취업·결혼·출산 및 육아 등과 관련된 이들의 고민과 고통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는 와중에 ‘1+10’ 행사를 해도 눈길조차 못 받을 것 같은 ‘대한민국 정치’가 결국 카운트펀치를 날렸다. 이상한 아줌마들 때문에 촉발돼,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이 역겹고 진절머리 나는 재난은 다양한 연령층의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젊은이들이 왜 자신의 조국을 비아냥거리는지, 왜 ‘헬조선’이 보통명사화되고 있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도록 만들고 있다.

퇴직하는 세대는 마땅한 소득이 없어 자영업으로 뛰어들고, 청년들 역시 부족한 일자리 때문에 창업으로 눈을 돌린다. 둘 다 성공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게 현실이고 함정이다. 끝이 보이지만 시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상당수는 고생만 직사하게 하고 소득은커녕 빚만 지기 십상이다.

국세청 자료를 보면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3천명이 새로 가게를 차리고 매일 2천명은 장사를 접은 것으로 나타난다. 통계상으로는 자영업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이게 자영업의 활황 때문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저 ‘망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길…’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뛰어드는 자영업자가 이탈자보다 많음을 알려주는 서글픈 수치일 뿐이다.

살다 보니 수십억원짜리 말을 타는 학생을 대신해 교수가 과제를 해주고 점수까지 주는 경우도 있더라. 부모가 ‘조물주보다 윗선’이라는 건물주라면 모르겠지만, 이 땅의 대부분 술래들은 입시에 치이고, 취업에 가위눌리고, 결혼에 애간장이 타고, 육아와 교육에 진이 다 빠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가기도 벅차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나라 밖도 희한하고 걱정스러운 일 천지다. 자유민주주의국가인 미국의 트럼프정부가 보호무역을, 공산주의국가인 중국이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주창하는 등 전에 알던 것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또 우리 정치만큼이나 짜증나게 만드는 이웃 섬나라 지도자들은 일본 국정교과서를 통해 배웠는지 틈만 나면 터무니없는 소리만 해댄다.

술래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대역죄인도 아닐진대, 무슨 걱정과 근심을 그렇게 싸짊어지고 살아야 하나. 옛말에 ‘맞은 놈은 펴고 자고 때린 놈은 쪼그리고 잔다’고 했는데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에서는 맞은 놈이 도망다니고, 팬 놈은 아무렇지 않은 듯 활보하고 있다. 이게 우리가 배우고, 가르쳤고, 물려줘야 할 정의는 아니지 않은가.

이제 술래잡기놀이는 그만하자. 정말 지겹다. 정권이 바뀌든, 정치가 달라지든, 술래가 행복해지는 게 가장 크고 소중한 가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지옥을 만드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는데…. ‘헬조선’이라는 불편한 단어가 사라지고 ‘헤븐조선’을 검색창에 쳐 볼 수 있는 날은 도대체 언제쯤일까.

장준영 (편집국 부국장 겸 사회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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