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문학 이야기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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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21   |  발행일 2017-01-21 제23면   |  수정 2017-01-21
[토요단상] 문학 이야기의 변명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생활하며 우리의 삶 또한 이야기를 이룬다. 이런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잘 다듬어진 것이 바로 문학이다. 인터넷과 영화, 텔레비전의 연예오락물 등이 쏟아내는 이야기와 달리, 문학을 통해서 얻게 되는 소중한 가치와 의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오랜 역사 내내 문학이 해 온 주된 기능은 재미를 주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이 글을 읽게 된 이후 학문과 출세의 통로였던 독서가 오락의 기능까지 갖게 되었을 때 그 주요 대상은 문학이었다. 한편 우리 시대의 주류 문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탐구를 특징으로 해 왔다. 관습이나 통념을 벗어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면서 우리를 보다 자유롭게 해 준 것이 현대문학의 의의에 해당된다. 또 한편 문학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미를 표현하는 기능을 해 오기도 했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감정을 고양시키며 심미적 즐거움을 준다.

이러한 세 가지 효과는 각 작품에서 모두 발견되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이 중 어느 하나가 지배적인 양상을 띤다. 이에 따라, 문학을 그 기능면에서 세 가지로 갈라 볼 수 있다. 인간과 사회의 탐구를 통해 우리 삶의 양상을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경우가 ‘운동으로서의 문학’이요, 미의 창조를 통해 스스로가 목적이 되는 유일무이한 존재를 지향하는 것이 ‘작품으로서의 문학’이고, 읽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텍스트이고자 하는 경우가 ‘유흥으로서의 문학’이다.

이 세 가지 유형 모두가 나름의 의미를 갖지만, 오늘 우리가 그 부흥을 바라는 것은 첫째다. ‘작품으로서의 문학’의 효과는 다른 예술에서 더 잘 취할 수 있는 것이며, ‘유흥으로서의 문학’의 기능은 여타 문화산업의 산물들이 이미 충분히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문학의 탐구는 두 가지 의의를 갖는다. 하나는 우리를 관대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문학의 탐구는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찾아내어 밝히는 식으로 전개된다. 문학작품은, 일상의 감각에서는 봐도 보지 못한 채 간과하게 되는 것, 문제임에도 문제라 여기지 않게 되는 것들에 주목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게 밝혀진 문제보다는 문제를 그렇게 밝혀내는 문학의 시선인데, 바로 그러한 시선이 우리를 관대하게 만들어 준다. 사소해 보이는 것에 깃든 의미, 아무것도 아닌 듯 버려지는 것들의 소중함, 자명해 보이는 것의 허구성, 견고해 보이는 것의 허망함 등을 밝히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사태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한걸음 물러서서 찬찬히 바라보는 너그러운 마음을 얻게 된다.

문학의 탐구가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는 자유이다. 운동으로서의 문학이 수행해 온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탐구는 통념에 대한 저항을 특징으로 한다. 중세의 귀족적 인간관을 근대문학이 해체하고 사회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최전선에 문학이 함께 해 온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 시대의 완고한 윤리나 규범에 때로는 도발적일 만큼 생산적인 문제제기를 수행하는 것도 바로 문학이다. 문학의 이러한 노력에 의해, 인간의 참모습이 폭넓게 인정받게 되고 사회의 실상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공유되면서, 우리의 자유가 좀 더 원활하게 신장되어온 것이다.

이러한 문학, 사회를 좀 더 낫게 만들고자 하는 행위로서의 ‘운동’에 속하는 이 문학의 가치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더욱 절실하다. 경제제일주의의 흐름이 사회를 지배해온 한편, 말과 실제가 일치하지 않고 책임과 짝을 이루지 않는 권한이 기승을 부리는 상황이 심해지면서, 우리들 시민의 자유가 위축되고 개개인의 인성 또한 피폐해져 온 까닭이다. 따라서 작품 감상을 통해 심미안을 높이거나 이야기의 즐거움에 빠지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문학의 탐구 정신을 통해 우리 자신과 사회를 대면해 보는 일이 좀 더 주목될 필요가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이 자리를 빌려 문학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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