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에서 촉발된 집단 히스테리, 사회를 망쳤다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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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21   |  발행일 2017-01-21 제16면   |  수정 2017-01-21
우리는 아이들을 믿는다
80년대 美 뒤흔든 아동학대 사건
훗날 학부모의 망상으로 밝혀져
검찰·언론 등 사회의 마녀사냥
性 보수주의 운동 부활 불러와
공포에서 촉발된 집단 히스테리, 사회를 망쳤다
리처드 벡 지음/ 유혜인 옮김/ 나눔의 집/ 452쪽/ 1만7천원

“아이들이 위험하다.”

1980년대 미국 전역에는 아동 학대에 대한 공포가 만연했다. 그 시작은 1983년 여름이었다.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남서부의 해안도시 맨해튼 비치에서 아이들이 위험에 빠져있다는 의혹이 일었다. ‘맥마틴 유치원 아동학대’로 알려진 사건의 시작이었다.

그해 8월 주디 존슨이라는 여성으로부터 경찰에 신고가 들어왔다. 훗날 망상형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는 존슨은 맥마틴유치원에 다녔던 두 살짜리 아들이 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신고를 했다. 경찰은 9월 문제의 교사 레이 버키를 체포했고 수사 범위를 넓혀 나갔다. 맥마틴에 다녔거나 현재 다니고 있는 아동 약 200명의 부모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편지는 부모들에게 자녀에게 성추행이 벌어지는 현장을 목격했거나,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해 물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학부모들에게 직계가족 외에 수사에 대해서 의논하지 말라는 부탁을 했다. 하지만 이들은 경찰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부모들은 전화 통화를 하며 소문을 이야기했고, 정보도 교환했다. 사건은 예비심문, 재판을 거쳐 1990년이 돼서야 끝이 났다.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형사 재판이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재판은 마무리됐지만 이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공포에서 촉발된 집단 히스테리, 사회를 망쳤다

이 사건뿐 아니라 당시 보육기관 아동 학대 사건으로 약 190명이 정식 기소됐고 최소 83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사회복지사와 검사들은 상상을 넘어서는 잔인한 학대가 몇 년 동안 은밀하게 이뤄졌다고 했다. 이에 피고들은 검찰이 기소한 배경에는 세일럼 마녀 재판(환각증세를 일으키는 야생 버섯을 먹은 소녀들의 이상행동을 마녀의 행동으로 몰아 200명 가까운 무고한 이들을 법정에 세우고 19명을 처형한 사건)과 같은 집단 히스테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유사한 사건이 이어지면서 자녀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거나 보육기관에 보내는 것은 위험하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자신들이 무고하다는 피고들의 주장이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맥마틴유치원 사건만 해도 실체가 없었다. 아이들의 진술은 있지만 그에 따른 물증은 없었다. 사회복지사와 검찰은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아이들에게 얻어내기 위해 질문을 했다. 실제 맥마틴유치원을 다닌 5세 소년은 심리치료사에게 “선생님이 어디를 만졌어?”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받았다. 그 소년은 계속해서 “아무도 안 만졌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한 치료사는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아이들에게 이렇게까지 물었다. “너 멍청이처럼 굴래? 똑똑한 어린이니까 선생님을 도와줄 거지?” 미국 전역의 언론도 자극적인 내용만 보도해 ‘아이들이 위험하다’는 공포를 증폭시켰다.

잡지 ‘n+1’의 편집기자인 저자는 1980년대 맥마틴유치원 아동학대 사건의 본질을 이 책에서 살펴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집단 히스테리가 새로운 사회구조에 어떻게 반응했고,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정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건의 방대한 기록, 중심 인물 인터뷰를 바탕으로 여성, 아동, 성(性)을 둘러싼 논쟁의 판도를 바꿔놓은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면밀하게 파헤친다. 이 사건은 가정 밖에서 자신의 삶을 추구하면서도 어린 자녀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여성을 향한 일종의 경고였다. 동시에 1980년대 부활한 성 보수주의 운동의 든든한 무기였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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