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단지 세상의 끝·더 킹

  • 김명은
  • |
  • 입력 2017-01-20   |  발행일 2017-01-20 제42면   |  수정 2017-01-20

단지 세상의 끝
12년 만에 가족을 만나다, ‘내 죽음’을 알리기 위해


20170120

불치병에 걸린 유명 작가 루이(가스파르 울리엘)는 고향을 떠난 지 12년 만에 집을 찾는다. 시한부 선고를 받아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가족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아들을 위해 정성껏 요리를 준비하는 어머니(나탈리 베이), 오빠에 대한 환상과 기대로 예쁘게 치장하는 여동생 쉬잔(레아 세이두), 못마땅한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보는 형 앙투안(뱅상 카셀), 그리고 처음으로 루이와 인사를 나누는 형수 카트린(마리옹 코티야르)까지. 가족들은 저마다 다양한 형태로 루이를 맞이한다. 그러나 시끌벅적하고 감격적인 재회도 잠시, 가족들은 루이의 고백이 시작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분노와 원망의 감정을 분출한다.


佛 장 뤽 라갸르스의 동명 희곡을 재해석해 영화로
자비에 돌란 감독 신작…‘칸’심사위원 대상 등 2관왕
가스파르 울리엘 등 다섯 배우 연기 호흡도 명품급



루이는 집을 떠났다가 죽음을 앞두고서야 돌아오고, 여동생 쉬잔은 그런 오빠를 잘 모르지만 동경하고 있다. 어머니는 가족의 화목을 바라고, 형 앙투안은 그런 어머니와 집을 떠난 채 자신만의 삶을 살아온 루이가 못마땅하다. 형수 카트린은 그렇게 갈등하고 부딪히는 이들을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는 입장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다섯 사람은 12년 만에 모여 함께 한 끼 식사를 하게 된다. 가장 가까운 사이로,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오랫동안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이들은 결국 진심을 전하지 못한 채 동경, 반가움, 외로움, 원망, 슬픔, 열등감 등 관계마다 서로 다른 형태로 뒤섞인 감정들을 뿜어내며 마지막 3시간을 보낸다.

‘단지 세상의 끝’은 프랑스의 극작가 장 뤽 라갸르스의 동명 희곡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모진 말과 행동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소통의 부재와 인간관계의 애증을 그려낸다. 캐나다 출신 ‘칸의 총아’ 자비에 돌란 감독이 2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인간 존재를 깊이 있게 성찰하며 예술적 성취가 돋보이는 영화에 수여되는 에큐메니컬상을 받으며 2관왕에 올랐다. 프랑스에서는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해 개봉 첫 주 만에 40만 관객을 동원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돌란 감독은 한정된 시공간 안에서 오로지 다섯 주인공의 대화와 표정으로 관계 속의 갈등과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영화의 특성을 고려해 그 어느 때보다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였다. ‘로렌스 애니웨이’에서 호흡을 맞춘 어머니 역의 나탈리 베이를 비롯해 가스파르 울리엘, 레아 세이두, 마리옹 코티야르, 뱅상 카셀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들을 기용했다.

영화의 원작은 지문이 없는 실험적인 형식의 운문체 희곡이다. 행동보다는 대사가 주를 이룬다. 돌란 감독은 원작의 문체를 그대로 살리는 데 중점을 두고 영화를 연출했다. 반복과 군말, 잉여를 그대로 포용하면서 같은 말을 다시 하고, 그 말을 바로 잡는 방식을 통해 작가가 등장 인물들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부여했다고 봤다. 그 때문에 영화는 유난히 클로즈업 장면이 많다. 이 때문에 화면 구성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돌란 감독은 19세에 만든 데뷔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가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받아 세 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천재성을 알렸고, 2014년 다섯째 연출작인 ‘마미’가 칸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최연소 칸영화제 심사위원을 거쳐 지난해 ‘단지 세상의 끝’까지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작으로 선정되면서 그는 ‘칸이 사랑하는’ 감독으로 떠올랐다. (장르:드라마, 등급: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99분)


더 킹
‘개천서 난 용’ 어느 검사를 통해 본 韓 권력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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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 텔레비전이나 훔치고 다니는 삼류인생 아버지 밑에서 자란 박태수(조인성). 어머니는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자 집을 나갔다. 고등학생인 태수는 싸움으로 서열 매기기에 혈안이 된 남학생들과 날마다 주먹질을 해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검사에게 뺨을 맞는 모습을 본 뒤 검사가 되길 꿈꾼다. 진정한 권력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된 것이다. 수업 시간에는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다가 신기하게도 롤러스케이트장이나 기찻길 같은 백색소음이 나는 곳에서는 무서운 집중력을 발휘하는 태수는 어느덧 전교 1등을 하더니 서울대 법학과에 가뿐히 합격한다. 운동권 여자친구와 함께 다니다 검거돼 끌려간 군대에서조차 책을 손에서 놓지 않던 그는 사법시험에 단번에 붙는다. 사법연수원 시절 마담뚜 소개로 만난 돈 많은 집안의 딸이자 미모의 방송사 아나운서인 임상희(김아중)와 결혼한다.

초임검사 시절 태수는 여느 샐러리맨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한다. 그러다 국회의원 출신의 지역 유지 아들이 연루된 여고생 성폭행 사건을 맡게 되고, 그때 권력이 그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다가온다. 사건을 무마하는 대가로 차기 검사장 후보로 거론되는 한강식(정우성)의 라인을 타게 된 것이다. 연결고리 역할은 권력 앞에 순종적인 강식의 오른팔 검사 양동철(배성우)이 맡았다. 20대 초반에 사시에 패스하고 노태우 정권 시절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목포를 평정한 강식은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실세 중의 실세다. 그런 그와 한 배를 탄 태수는 이후 승승장구하며 점점 더 권력의 맛에 중독된다. 그러나 스스로 왕이 되려 한 자신의 꿈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시국과 맞닿은 듯한 장면들…뉴스·영화 경계 모호
조인성, ‘쌍화점’ 이후 9년 만의 스크린 복귀 관심
정우성과 브로맨스…배성우·김의성·류준열 가세



영화 ‘더 킹’은 ‘개천에서 난 용’인 한 남자의 일대기를 통해 한국 사회 권력 상층부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준다. 전두환 정권부터 이명박 정권까지 이어지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을 권력자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작품이다.

영화 초반부 태수가 검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주인공 조인성의 내레이션과 함께 가볍고 유쾌하게 그려진다. 고등학생 태수의 성적이 갑자기 껑충 뛰어오르자 담임 선생님(성동일)이 커닝을 의심하고 그를 마꾸 때리는 장면을 비롯해 웃음을 유발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태수가 검사가 된 이후 이야기에는 권력을 휘두르는 조직에 대한 풍자와 해학이 들어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무당을 찾아가 점을 보거나 굿판을 벌이며 자신들이 원하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기를 기원하는 검사들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검찰은 정치권, 언론계는 물론 조직폭력과도 결탁한다. 배우 김의성이 극중 강식과 연계된 목포 들개파의 보스로, 류준열이 태수의 고향 친구로 그의 뒤에서 해결사 역할을 하는 조직의 2인자 최두일로 출연한다.

‘더 킹’에는 현 시국에 대한 은유와 비유로 보이는 듯한 장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전직 대통령들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할 당시 의원 신분으로 현장에 있던 박근혜 대통령 등 실존 인물에 대한 다양한 자료 화면이 삽입됐다. 일각에서는 강식과 태수 캐릭터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자연스레 상기시킨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8년 ‘쌍화점’ 이후 9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조인성은 절망에 빠지는 감정선을 폭넓게 표현해낸다. 정우성은 외향적으로는 근엄해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권력의 우스운 면을 엿볼 수 있는 인물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영화는 사건 위주의 전개가 아닌 주인공 태수 캐릭터를 중심으로 확대해가는 스토리를 보여줘 강력한 한 방이 없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장르:범죄·드라마, 등급: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134분)

김명은기자 dra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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