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 잘 견디렴” 야생동물 먹이주기 봉사

  • 박태칠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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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18   |  발행일 2017-01-18 제14면   |  수정 2017-01-18
20170118
대구자연보호산악회 회원들이 팔공산에서 야생동물들을 위한 먹이주기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구자연보호산악회원들
강추위에도 마대자루 들고
11∼3월 매주 팔공산 올라
여름철엔 환경정화활동도

강한 바람까지 불면서 체감온도는 영하 10℃를 훨씬 밑돌았던 지난 14일 팔공산 팔공학생야영장. 올 들어 최강 추위라면서 언론에서도 부산을 떨던 그날,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50여 명이 추위 속에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찬바람이 운동장을 휘몰아치자 먼지가 허옇게 일어났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겨울 동안은 거의 매주 산에 오르다시피 합니다. 이 정도 추위는 거의 일상이라 각오해야지요.”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회원들에게 조끼를 나눠주던 한상인 대구자연보호산악회 회장의 설명이다.

트럭에서는 몇 사람이 배추를 비롯해 당근과 무, 그리고 사과·수수·보리·쌀·조·땅콩 등을 개인용 자루에 나눠 담은 뒤 한 사람씩 나눠준다. 겨울철 야생동물에겐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먹이다. 모였던 사람들은 한 자루씩 들고 산을 오른다. 이들이 입고 있는 조끼에는 ‘대구자연보호산악회’라는 글씨가 뚜렷하게 적혀 있다.

얼핏 이름만 보면 등산인들의 모임 같지만, 사실은 산과 동물 등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봉사단체다. 1976년 창단된 대주산악회가 모태다. 일부가 자연보호 활동으로 성격을 바꾸면서 오늘에 이르렀으니 역사가 상당하다.

현재 회원은 90명이지만 주로 주말에 활동하기 때문에 주 중에 시간이 없는 학생들도 참여를 할 수 있다. 청소년들의 자연보호 활동 참여는 언제든지 환영한다는 것이 대구자연보호산악회의 입장이다. 여름철에는 주로 금호강이나 대구근교 산에서 환경정화활동을 하고 겨울에는 팔공산 일대에서 야생동물 먹이주기 활동을 펼친다.

마침내 목적지인 산중턱 골짜기에 도착했다. 이때부터는 요리와 배식을 할 차례다. 과일이나 당근·무·배추 같은 것들은 적당히 썰고, 곡물들도 곳곳에 분산하여 뿌린다. 한곳에 모아 놓으면 힘이 약한 짐승은 얻어먹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임 회장인 이동운씨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새집을 설치했다. 날아다니는 새들까지 배려하고 있다. 원로 회원인 원석화씨는 지난해 달았던 새집을 보여 준다. 내부에는 낙엽과 새의 깃털이 소복하다. 작은 새 한 가족이 단란하게 살다가 간 흔적이다.

새집까지 달고 나니 점심때가 되고 야생동물 먹이주기 봉사활동은 종료됐다. 총무인 권남희씨가 하산하는 회원들에게 빵을 나눠줬다. 강추위 속에 활동을 마무리한 회원들의 얼굴과 피부는 차가웠지만 빵 하나에 이내 환해지며 온기가 돈다.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산짐승들도 만찬을 즐길 것이다. 하산하며 뒤돌아보니 나무에 금방 달아놓은 빈 새집에 곧 새 식구가 자리 잡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형도 시인의 ‘빈집’이란 시가 떠오른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글·사진= 박태칠 시민기자 palgongsan7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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