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닭 울음소리와 초인의 백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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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17   |  발행일 2017-01-17 제31면   |  수정 2017-01-17
[CEO칼럼] 닭 울음소리와 초인의 백마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원숭이 해인 병신년이 저물고 정유년 닭의 해가 밝았다. 남쪽을 지키는 말과 같은 십이지의 하나로서 서쪽을 수호하는 ‘닭’은 세상의 아침을 가장 먼저 맞이하고 알리는 동물이다. 알람이 없던 시절, 먼 옛날부터 마당의 닭이 새벽에 홰를 치며 ‘꼬끼오’ 하고 울면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날 때임을 알아챘다. 그래서 닭은 은유적으로 ‘시작’ ‘출발’ ‘희망’을 이야기한다.

새해 초 집 대문에 복을 빌고 화를 물리치기 위해 붙이는 ‘세화’ 가운데 닭 그림이 있는데 밤에 떠돌던 귀신들이 새벽닭 울음소리를 듣고 도망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닭피를 뿌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민간신앙에 의하면 귀신이나 도깨비를 쫓기 위해 말피를 썼다고 하는데 말이 너무 귀하다보니 닭피로 대신하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한나라 한영이 지은 ‘한시외전(韓詩外傳)’에는 닭을 선비에 빗대어 다섯 가지 덕을 칭송한 대목이 있다. “머리의 관은 문(文), 발에 갈퀴는 무(武), 적에 맞서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 먹이를 보고 동료를 부르는 것은 인(仁), 때에 맞추어 시간을 알림은 신(信)이다.”

옛 그림에서도 수탉의 볏과 관직의 한자가 ‘冠(관)’으로, 닭 그림은 출세를 의미했는데 지체 높은 양반들의 전유물이었기에 역시 입신양명을 상징했던 말 그림과 공통점을 갖는다. 언제부터인가 닭이 머리가 나쁜 사람을 비유하는 대표적 비속어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전통적으로 닭 또한 말처럼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상징적 존재다.

말과 닭은 옛 사람들에게 하늘과 땅을 오가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인식되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날개 달린 닭, 그리고 바람처럼 빨리 달리는 말은 천상과 지상의 경계에 위치한 까닭에 영혼을 실어가고, 신의 뜻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여겨졌다. 조선시대 상여 위에 달린 ‘꼭두닭’이나 흑마를 탄 월직사자와 백마를 탄 일직사자 장식도 이들이 이승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한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말과 닭의 만남을 목격할 수 있다. 신라의 건국 신화를 보면 박혁거세는 하늘에서 내려온 말이 두고 간 알에서, 그 왕후인 알영은 닭의 형상을 한 용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다. 이를 두고 말과 닭을 토템으로 한 세력의 결합으로 탄생한 국가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다. 시인 이육사는 ‘광야’에서 까마득한 옛날 하늘이 열리고서야 들렸을 닭 울음소리와 먼 훗날 초인이 타고올 백마를 통해 독립에 대한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열망을 드러냈다. 여기서 닭은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존재이고, 백마는 초인과 함께 다시 찾아올 희망과 광명 그리고 존귀함을 나타낸다.

닭과 말이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하고 요긴한 가축이라는 사실은 고대부터 면면이 이어져오고 있는 이들 신비로운 이야기들의 탄생 배경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 우연히도 우리의 닭과 말이 모두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해 말부터 전국의 양계농가는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으로, 한국마사회는 10년 넘게 공들여온 승마대중화 사업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귀족승마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라는 말처럼 지금이 우리 모두의 관심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한국마사회는 지난해 말 렛츠런재단을 통하여 전국 양계농가를 돕기 위해 3억원의 긴급 기부금을 전하였다. 새해 시무식 직후에는 전 직원이 삼계탕을 먹으며 닭·오리고기 소비 촉진에도 앞장섰다. 매주 경마가 있는 날에는 닭·오리고기 소비 촉진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다.

승마대중화 사업도 전국의 크고 작은 수백 개의 승마장들과 함께 일관성 있게 유지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작은 바람들에 휘둘리지 않고 온 국민이 승마를 쉽게 즐길 수 있게 하자는 당초의 백년지계를 이룰 수 있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묵은 과거를 털어내고 새롭게 시작하는 정유년, 닭의 힘차고 길한 울음소리로 출발하는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빌어 본다.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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