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지나친 사랑은 ‘독’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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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17   |  발행일 2017-01-17 제30면   |  수정 2017-01-17
[취재수첩] 지나친 사랑은 ‘독’
노진실기자 <경북부>

지난 12일 한 학부모 단체가 경북도교육청 앞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즉각 폐기 및 경북도교육감 퇴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을 마친 단체 관계자 일부가 의견서 전달 등을 위해 교육감실 방문을 예고했다. 기자가 먼저 교육감실 옆 사각지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교육감실 앞에서 직원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누구누구한테 전화해서 빨리 오라고 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뒤 15명가량의 도교육청 직원이 교육감실 입구 양쪽에 길게 도열해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학부모 단체에서 오기 전에 미리 교육감실 앞에 직원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 마치 범죄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앞서 기자회견은 누가 봐도 차분했다. 물리적 충돌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업무 중이던 직원들까지 불러 다수가 교육감실 앞을 지키고 서있는 것은 ‘과잉 대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기자가 사진으로 찍자 한 직원이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서있던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며, 직원들을 해산시켰다.

이후 실제 교육감실을 방문한 학부모회 관계자는 겨우 5명 정도로, 대부분 학부모였다. 아니, 처음부터 기자회견 인원은 채 스무 명도 되지 않았다. 물론 도교육청 직원들이 우려했던 ‘무슨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학부모들이 아예 교육감을 만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당일 오전 11시10분쯤 학부모들이 도교육감실을 방문했지만 “교육감이 없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렇다면 교육감도 없는데 직원들이 교육감실 앞을 지키고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이날 오전 11시40분쯤 교육감실을 나서는 이영우 경북도 교육감의 모습이 포착됐다. 대체 진실은 뭔가.

그날 취재를 하면서 기자는 지난해 있었던 ‘과잉 의전’ 논란이 떠올랐다. 지난해 3월 도교육감이 점심식사를 했던 예천의 한 식당에서 장학사들(심지어 장학사 명찰까지 달고)이 교육감 도착 전 식당 앞 주차장에 서서 주차 자리를 맡아두고, 일반 손님의 주차를 막아 실랑이가 벌어진 것.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해 여름 기자는 경북의 학교폭력 심의건수, 피해학생 수 등이 전국 최상위권이며, 학교 안팎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잇따르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학교폭력 자료는 당시 국회의원이 낸 자료를 분석한 것이고, 실제 그즈음 각종 사건도 많았다. 기사가 나가자 도교육청 몇몇 직원이 기자에게 와서 그런 기사가 나와 ‘감(監)님’이 놀라지는 않았을지 걱정을 했다. 차라리 기사 내용이나 데이터를 가지고 따지지 그랬나. 맞대응도, 의전도, 충성도, 관행이라 하기엔 너무 과하지 않은가. 지나친 사랑은 때론 독이 되기 마련이니. 주는 쪽에도, 받는 쪽에도, 사회에도 모두 독.

올해 경북 교육 지표 중 하나가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다.

경북 학생들을 창의적 인재로 길러내면 뭐하나. 저런 조직, 사회에서 숨 막혀 살 수나 있겠나.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노진실기자 <경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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