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당신은 표현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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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17 08:27  |  수정 2017-01-17 08:27  |  발행일 2017-01-17 제25면
[문화산책] 당신은 표현하고 있습니까
안현주 <메시지캠프 기획팀장>

얼마 전 지인의 생일이었다. 가끔 같이 밥도 먹는 사이에 모르는 체 넘어갈 수가 없어 축하카드를 준비했다. ‘생일 축하드려요’ 이런 의례적인 표현 외에 또 어떤 말을 덧붙여야 할까 한참을 머뭇거렸다. 이러한 고민은 만국 공통인가 보다. 영화 ‘500일의 썸머’에 나오는 조셉 고든 레빗의 직업은 카드 카피라이터다. 미국의 카드회사들은 영리하게도 카피라이터들이 다양한 축하 메시지를 미리 적어 놓은 카드를 상품화한다. 미국인 중에는 자신의 마음을 대신한 메시지가 적힌 카드를 사서 서명만 해서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전혀 무성의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카드를 받는 대상이나 상황에 따라 상상 이상으로 세분화되어 있는데 각종 기념일은 물론이거니와 이사 축하 카드부터 은퇴 기념 카드도 있다. 메신저와 SNS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편의점이나 서점 등에서 카드 섹션을 손쉽게 찾을 수 있고, 메시지를 고민하는 것만큼이나 까다롭게 카드를 고르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만큼 깐깐하고 번거로운 과정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함으로써 성의 표시를 하는 셈이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얼마나 어려우면 내 마음을 대신해 적어줄 사람이 필요할까. 가끔은 인간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에 대해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할 때도 있다. 살아가다 보면 본의 아니게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솔직하게 다 드러낼 수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까봐도 그렇고, 보는 눈이 많아서이기도 하다. 나이가 어릴수록, 직급이 낮을수록 더욱 그렇다.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한 페르소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신기할 정도로 잘 참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어느 날 압력밥솥처럼 폭발하기도 하고, 술의 힘을 빌려 표출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꾹꾹 눌러 담은 감정들이 참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든다.

개인적인 경험상, 감정을 인내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의외로 당신에게 무지하다.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당신의 침묵은 ‘지금의 상황이나 하고 있는 일이 괜찮구나, 견딜 만하구나’라고 해석된다. 그래서 참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떤 말을 적어야 할지 몰라 보내지 않은 카드보다 서툴게나마 표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바다. 당신을 위해서. 안현주 <메시지캠프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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