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최순실의 국정농단, 청와대의 권력농단

  • 박 규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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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16   |  발행일 2017-01-16 제31면   |  수정 2017-01-16
[월요칼럼] 최순실의 국정농단, 청와대의 권력농단
박규완 논설위원

국어사전에는 분권(分權)을 ‘권한이나 권력의 분산’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행정학용어사전은 ‘의사결정 등의 권한이 중앙과 상급기관에만 집중된 것이 아니라 지방 또는 하급기관에도 주어지는 상태이며, 집권(集權)의 반대 의미’라고 풀이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압도적 집권국가다. 정치권력은 대통령과 청와대에 집중돼 있고, 경제권력은 재벌기업들이 과점(寡占)하는 양상이다. 지방자치 20년이 넘도록 지방분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과도한 수도권 집중은 동서고금에 전례가 없다.

분권은 이제 글로벌 트렌드다. 애플과 구글도 분권형 기업이다. 애플은 CEO 팀 쿡이 독단적으로 정책 결정을 하지 않는다. 디자인 총괄, 소프트웨어 개발, 마케팅 등 부문별로 의사결정권자가 나뉘어 있는 사실상의 집단지도 체제다. 구글의 특장(特長)이 개방적·수평적 조직문화라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애플과 구글은 브랜드 가치 세계 1·2위로 가장 잘나가는 글로벌 기업이다. 민주적 리더십의 긍정적 성과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헌법에 보장된 권한만 행사해도 무소불위다. 국정원장·검찰총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KBS사장 등 권력과 여론의 향배를 주도할 수 있는 요직은 물론, 장·차관 및 200여명의 공공기관장에 대한 임명권이 있으니 국정을 좌지우지할 보검을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 거기다 관행이나 폐습·월권에 의한 청와대 권력까지 누린다. 민주국가 치고 대한민국처럼 심각한 ‘청와대 공화국’은 또 없다. 특히 문민정부 이래 박근혜정부의 청와대 권력 집중이 가장 도드라진다. 박근혜의 청와대는 법에 규정된 권한은 물론 초법적 권력까지 휘두르며 국정을 농단했고, 이는 최순실 같은 비선실세가 발호할 수 있는 토양이 됐다.

대통령과 청와대에 권력이 집중되면 대통령의 성향과 역량에 따라 국정의 기복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집권은 일견 강한 국정 추동력의 전제조건인 양 비치기도 하지만, 기실은 독선과 독단에 의해 국가위험지수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 현실적으론 더 이상 세종대왕 같은 현군(賢君)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독선과 불통으로 상징되는 박근혜 아류의 암군(暗君)이 등장할 개연성이 더 크다. 박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을 바탕으로 국정 역사교과서, 개성공단 폐쇄 따위의 시대착오적 정책을 힘으로 밀어붙였다. 대통령중심제에서 그나마 대통령과 청와대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책임내각제와 명실상부한 권한 위임이다. 대선 때마다 후보들은 책임내각제를 공약으로 채택했지만, 대통령이 되고는 오리발을 내밀었다. 박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대통령 권한 축소를 법으로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개헌만으론 부족하다. 청와대의 관행적 월권도 함께 시정돼야 한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은 반민주적이고 반문명적인 공권력의 폭거다. 이게 권력의 심부(深部) 청와대에 의해 기획됐다니 모골이 송연하다. 청와대는 국립대 총장 후보자에 대한 사상 검증까지 주도하고, 중앙부처 공무원을 찍어 누르는 식으로 임면(任免)하는 전횡을 서슴지 않았다.

눈치 빠른 공무원은 청와대가 떡 주무르듯 권력을 농단할 때 이미 대세를 판단했다. 오직 청와대 실세의 심중(心中)만 헤아리며 그들만의 ‘성공 방정식’을 풀었고, 그 결과는 ‘영혼 없는’ 공무원과 ‘최순실 부역자’ 양산(量産)으로 이어졌다. 입바른 소리를 했던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눈치 없는 공무원의 대명사가 된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은 청와대에 찍혀서 쫓겨났다.

조선왕조 시대에도 승정원의 권한은 왕명을 출납하는 일에만 국한됐다. 승정원이 의정부를 장악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농단(壟斷)은 이익이나 권력을 독차지한다는 뜻이다. 청와대의 국정농단과 분탕질이 더 이상 계속돼서는 곤란하다.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의 조직 축소가 절실한 이유다. 청와대의 월권이 횡행하는 한 국정 시스템의 정상적 복원은 요원하다.
박 규 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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