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오히려 새 문화정책이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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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16   |  발행일 2017-01-16 제30면   |  수정 2017-01-16
20170116
최현묵 (대구문화 예술회관 관장)

엉망이 된 국가 문화정책
정치·경제논리 배제하고
중앙 일방 전달체계 탈피
광범위한 네트워크 구성
새 원칙과 방향 제시해야


작금의 상황으로 나라도 나라지만 문화부가 엉망이다. 장관에서부터 일반 직원까지, 핵심정책부터 일상 업무까지 마비상태라고 한다. 산하기관도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물론 여타 기관들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예술단체들은 연일 블랙리스트 문제로 항의와 시위를 멈추지 않는다. 문화부가 세종시에 있어서 망정이지 전처럼 세종로에 있었다면 문화예술계 점거 농성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누군가는 국가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문화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하여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어차피 새로운 정부, 새로운 문화부가 꾸려질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의 문화정책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도모해야 한다.

첫째, 앞으로 문화정책은 정치논리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정치인이 문화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함은 물론,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나 정파이익이 문화정책에 스며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문화는 서로 다른 것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다양성의 세계다. 반대로 정치는 생각과 이해가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는 절대적인 권력의 세계다. 그러므로 다른 것은 적이요, 청산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정치다. 이번 블랙리스트 사건은 문화에 정치논리가 개입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둘째, 이제 문화정책에 경제논리가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 문화산업이라 칭하면서, 문화도 돈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 그간의 문화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흥행사업과 대중연예는 그 옛날부터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그와 같은 흥행과 대중연예사업이 순수문화와 뒤섞여 문화정책이라는 하나의 틀 안에서 재단되기 시작하였다. 소위 한류로 인한 국가 브랜드 가치 혹은 경제 이익 운운하면서 순수문화의 영역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문화 사기꾼들이 개입할 여지를 만들어준 것이다. 순수예술 혹은 문화,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있다.

셋째, 이제 문화정책 전달체계를 재검토해야 한다. 지금처럼 중앙에서 주요 정책과 방향을 정해놓고 지방에서는 일방적으로 시행하는 방식은 탈피해야 한다. 또한 지방 역시 광역 자치단체가 독점하고 있는 지역의 문화정책 혹은 문화사업 일정 부분을 기초단체에 위임하여야 한다. 특히 한국문화예술진흥기금을 활용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업은 과감하게 지방에 배분하여 지방에서 스스로 사업 단위를 설계하여 정책을 집행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자체 사업은 대폭 축소해야 한다. 왜냐하면 위원회 자체 사업의 경우, 대부분의 수혜 대상이 중앙에 편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확산되고 있는 생활문화 관련 사업은 기초단체로 대폭 이양되어야 한다. 사업의 성격도 그렇고 그 대상도 일반 주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넷째, 새로운 문화정책 수립을 위한 광범위한 네트워크 구성이 필요하다. 여기서 네트워크라고 표현한 이유는 일부 중앙의 전문가들로 한정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문화 외적인 전문가들과 지방에 있는 문화전문가들의 수평, 수직적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기구를 통하여, 토론과 의견 수렴을 통하여 그간의 문화정책의 공과를 정리하여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창조적인 문화정책의 원칙과 방향이 정해져야 할 것이다.

이상 몇 가지를 제언하였지만, 여기 밝힌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당연히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하다. 지금처럼 국가의 문화정책이 엉망이 된 상황에서 모두가 손을 놓고 가만히 있거나 원망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국가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문화정책의 원칙과 방향에 대해서 오히려 지금, 꼼꼼하게 준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지금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이다. 최현묵 (대구문화 예술회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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