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평범한 새해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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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16 07:36  |  수정 2017-01-16 07:36  |  발행일 2017-01-16 제15면
[행복한 교육] 평범한 새해맞이
장성보 <대구 성서중 교감>

1월이다.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시기다. 새해 결심이나 하면서 차분하게 맞이하고 싶은데 올해는 1월에 새 학년의 계획을 웬만큼 세워놓아야 해서 좀 분주하다.

서양에서도 1월은 끝과 시작, 나감과 들어옴과 같은 이중적 의미가 혼재하는 때인가 보다. 로마 신화에서 야누스는 출입문의 수호신으로 문과 대문, 문간, 처음과 끝, 시작과 변화를 상징하는 신이다. 이 야누스는 한 해를 시작하는 1월(January)의 어원이 되기도 하는데, 1월(January)은 한 해가 끝나고 다른 한 해로 들어가는 문을 뜻한다고도 한다. 특이한 것은 고대 로마인들은 문에 앞뒤가 없다고 생각해 야누스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겼으며, 이로 인해 야누스는 서로 반대편을 보고 있는 두 얼굴이나 머리가 있는 모습으로 묘사될 때가 많다. 본래는 수호신이라는 긍정적 특성을 가진 신이었지만, 두 얼굴을 가졌기에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가리켜 야누스 같다고 하면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나 단체, 캐릭터를 이르는 말이 되었다.

이렇게 보니 묵은해니 새해니 하면서 구분지어 새해의 다짐을 하고 있는 내 모습도 이중적으로 보여 속이 뜨끔하다. 묵은해와 새해는 분명한 한계가 지어져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오늘에 이어지는 평범한 내일에 불과하지 않은가.

‘우리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 이렇게 살고 있다.

바로 지금이지 / 그 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다음 순간을, 내일 일을 / 누가 알 수 있는가. / 학명 선사는 읊었다.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라./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라,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법정 ‘묵은해와 새해’)

여름철 피는 수국의 꽃말은 진심과 변심이다. 수국은 꽃이 피면서 색깔이 변하는데 수국의 색깔이 변하는 것은 토양의 성질 때문이다. 토양의 산성도에 따라 수국의 꽃 색깔이 달라져서, 땅이 알칼리성이면 흰 꽃이 피고 산성이면 푸른 꽃이 핀다. 같은 수국 꽃인데 보라색 수국의 꽃말은 ‘진심’이고 흰 수국의 꽃말은 ‘변심’이다. 꽃 자체가 변하는 게 아니라 수국을 변하게 만드는 것은 그저 토양이 다르기 때문인데, 사람들은 거기다가 마치 꽃이 변하는 것처럼 진심과 변심이라는 꽃말을 붙여 놓는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본질은 팽개친 채 외양에 치중하고, 현상에 쏠리고, 영역을 구분해서 무리 짓는 사회, 그래서 파벌·학벌·서열·신분의식이 팽배하다. 경쟁과 갈등을 부추기는 사회에 사회적 합리성을 점수로 내자면 아주 형편없는 점수가 나올 것이다. 진화의 목적과 방향을 잃고 있다.

‘진리는 때로 직선으로 또 때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학문의 경계를 관통하거나 넘나드는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학문의 울타리 안에 앉아 진리의 한 부분만을 붙들고 평생 씨름하고 있다’고 최재천 교수는 ‘통섭’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청맹과니처럼 두 눈 뜨고도 보이는 것,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내 안의 고집스러운 나를 지적하는 말이다.

지난 가을부터 읽기 시작한 ‘통섭’을 아직 반도 채 못 읽고 있다. 사실 뭔 말인지도 잘 못 알아듣겠다. 그래서 계속 읽어야 하나 접어야 하나 고민하면서 책에 끌려다니고 있지만, 경계짓는 것에 대한 경계를 올 한 해의 목표로 삼고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2년에 걸쳐 열심히 읽어볼 생각이다. 장성보 <대구 성서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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