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소녀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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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14   |  발행일 2017-01-14 제23면   |  수정 2017-01-14
20170114
노병수 대구 동구문화재단 대표

우리나라에 소녀상(少女像)이 처음 세워진 것은 2011년 겨울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아픔을 기억하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서였다. 첫 소녀상은 일제강점기 조선 처녀들의 흔한 외모인 단발머리 소녀로 만들어졌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의뢰하여 조각가 김운성, 김서경 부부가 제작했다. 재질은 청동(靑銅). 이것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천 번째 수요집회 때, 서울 종로구에 있는 주한 일본대사관 건너편에 세웠다.

소녀는 의자 위에 양손을 꼭 움켜쥔 채 맨발로 앉아있다. 단발머리는 고향과 부모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한다. 발꿈치를 든 맨발은 전후(前後)에도 정착하지 못한 오랜 방황을 의미한다. 소녀의 왼쪽 어깨에는 새가 앉아있다. 새는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의 혼(魂)과 연결해주는 매개체다. 바닥에 새겨진 소녀상의 그림자는 할머니의 모습이다. 옆에 놓인 빈 의자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위안부들의 자리다. 관람객이 앉아도 무방하다.

이후 소녀상은 경향 각지에 우후죽순처럼 세워졌다. 미국을 비롯해서 해외 곳곳에도 세워지고 있다. 지난 10일자 영남일보에 소개된 전국의 소녀상 모습은 너무나 다양했다. 겨울철이 오면 소녀상은 더욱 화려해진다. 시민들이 너도나도 둘러주는 털모자와 목도리, 숄, 벙어리장갑 같은 방한(防寒)거리 덕분이다. 대개가 공원이나 광장 같은 다중시설에 세워지지만, 대구만 장소를 구하지 못해 대구여상 교내 ‘명상의 숲’에 세워졌다.

당시 추진위원이었던 김교정 CKC 대표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소녀상을 세우기로 하고 도심공원 등의 장소를 원했으나, 대구시와 중구청이 모두 난색을 표해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동기 교육감의 주선으로 대구여상이 나섰다. 대구여상은 우국지사 김상열 선생이 설립한 학교다. 장소만 제공한 것이 아니라 비용까지 보탰다. 그렇게 일단락 났던 장소 문제가 최근 제2 소녀상 건립을 앞두고 다시 불이 붙었단다.

제번(除煩)하고. 사실 박근혜정부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위안부 합의라고 입을 모으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일본은 범죄 행위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과 사과 그리고 법적 배상까지 모두 피해갔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어떤 상의도 없었다. 깜짝 놀라게 해서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것일까? 할머니들이 돈이라면 어려운 형편에 덥석 받고 볼 거라고 생각했을까? 설마 그랬을까?

합의발표 이틀 뒤에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일본 기자들을 불러 “일본이 잃은 것은 10억엔이 전부”라고 자랑하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누구의 비아냥거림처럼 10억엔은 정유라가 타는 ‘말값’도 안 되는 돈이 아닌가. 어쨌거나 이 합의 하나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고 말았다.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다시 소녀상이 설치되자 일본이 난리가 났다. 아베 신조 총리가 나서서 “돈을 받았으니 약속을 지켜라”라고 한다. 그리고 주한일본대사와 부산총영사까지 불러들였다. 한일통화스와프협정 협의도 중단했다. 한일고위급경제협의도 연기했다. 기세가 자못 등등하다.

예전부터 위안부 합의에는 미국의 입김과 종용(慫慂)이 있었다는 설이 무성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는 두고두고 우리가 일본에 써먹을 수 있는 소중한 전략적 카드다. 그것을 단돈 몇 푼에 팔아버리고 찍소리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합의 당사자이니 이 정부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단기간의 외교마찰은 불가피하더라도 다음 정부에 새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같은 국정공백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다. 안타까우니까 별소리가 다 나온다.
노병수 대구 동구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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