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의 사랑이야기 .12] 매화 가지에 새봄을 걸어서- 김응서와 계월향(上)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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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12   |  발행일 2017-01-12 제22면   |  수정 2017-01-12
왜장 목을 벤 武將과 義妓, 쫓아오는 왜군에 겹겹이 포위되는데…
밤비에 새잎나거든
20170112
1815년에 그린 작자 미상의 계월향 초상. 그림 상단에는 ‘의기계월향(義妓桂月香)’이라는 제목으로 그녀와 김응서에 관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

‘나는 황금의 소반에 아침볕을 받치고 매화가지에 새봄을 걸어서, 그대의 잠자는 곁에 가만히 놓아드리겠습니다.’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와 시인으로 난세를 살았던 만해(萬海) 한용운(1879~1944)은 조선의 평양 명기 계월향(桂月香)의 애국충정을 위와 같이 기렸다. 계월향은 논개와 함께 대표적 의기(義妓)로 꼽힌다. 임진왜란 중에 왜장을 처단하고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조선 중기의 의로운 기녀로, 무신 김응서와의 사랑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김응서(1564~1624)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의 원군과 함께 평양성을 탈환하는 데 공을 세우고, 그 후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어 도원수 권율의 지시로 남원 등지의 적을 토벌하는 등 전장에서 공을 세우고 여러 벼슬도 지냈다. 처음 이름이 응서(應瑞)이고, 훗날 이름을 경서(景瑞)로 바꾸었다. 역사적 사실과 전해오는 야사를 엮어 이들 이야기를 정리한다.

평양서 첫만남 김응서와 계월향
서로의 모습에 반해 연인관계로
임진왜란으로 포로가 된 계월향
적장 처단계획 세우고 애첩노릇
기지 발휘 김응서 불러들여 거사

◆첫눈에 반한 무장과 기생

김응서는 1583년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했으며, 평안도방어사를 지내기도 했다. 김응서가 계월향을 처음 만난 것은 평안도방어사로 있을 때였다. 김응서는 나중에 길주목사(1615), 함경북도병마절도사(1616), 평안도병마절도사(1618)를 지냈다.

평양 기생 계월향은 자매처럼 친하게 지내던 동료 기생 채란과 평양 8경 중 하나인 연관정으로 나들이를 가곤 했는데, 어느 날 그곳에서 무예를 익히던 김응서와 만나게 된다. 계월향은 신출귀몰하는 칼솜씨며 대범하고 장부다운 그의 용모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마침, 연습을 끝낸 김응서가 한숨 돌리기 위해 나무 둥치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어여쁜 기생 둘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김응서는 계월향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곧 계월향은 김응서의 애첩이 되어 그에게 일부종사할 것을 다짐했다. 사랑을 맹세한 두 사람의 애정은 날이 갈수록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그러나 그런 사랑도 잠시, 곧이어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평양은 쑥대밭이 되어 갔다.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방어선을 지키느라 고군분투했지만 들리는 것은 패전의 소식뿐이고, 평양성의 함락은 시간문제가 되었다. 김응서 역시 군사를 이끌고 진격해 오는 왜군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했으나 전운은 점점 비극적인 양상으로 치닫고 있었다.

하루는 어렵게 자리를 마련해 계월향과 김응서가 마주 앉았다. 패전으로 침통한 김응서는 결국 울분을 터트렸다.

“외적의 침략에 목숨을 걸고 저항하며 민족과 강토를 수호하려고 했건만 중과부적이니 침통할 뿐이오. 백성은 죽어가는데 선조 임금은 의주로 피란을 가셨으니 이게 다 당파싸움만 하며 내분을 일으킨 조정 대신들을 잘못 둔 탓이 아니겠소.”

계월향은 수척해진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안타까워했다.

“소첩은 정치는 모르오나 나으리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백성들이 모두 나서서 나라를 구하고자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으니 승리의 날이 곧 올 것이옵니다.”

계월향의 따뜻한 위로는 그나마 힘이 되었다. 김응서가 다시 결연히 말을 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평양성 함락이 머지않았다는 점이오. 전세가 이 지경이니 당신은 빨리 피란갈 준비를 하구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왜군의 사기를 꺾어 전세를 뒤집는 길은 적장의 머리를 자르는 것뿐이오. 나는 결단코 그 목을 베어 평양성을 지킬 것이오.”

시간이 지날수록 왜적의 여세는 더욱 거세어져 결국 계월향은 채란과 함께 피란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평양을 빠져나가다가 채란은 왜병에게 겁탈당한 후 살해되고, 계월향은 몸을 지키기 위해 장도로 잡병을 죽이고 달아났지만 끝내 잡히고 말았다. 그때가 1592년 6월이었다. 왜군은 이미 평양성을 점령해 승리에 도취돼 있었다. 오랜 전쟁으로 여자에 목말라 있던 왜군들은 계월향의 미모를 보자, 그녀를 생포해 왜군 대장인 고니시 히(小西飛)의 진영으로 끌고 갔다. 고니시 히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선봉장이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장이었다.

◆두 사람이 공모해 왜장의 목 자르고

함락된 평양성에는 포로로 잡힌 백성들과 왜군의 잔혹한 살육행위로 희생된 시신이 즐비했다. 계월향은 참혹한 전란 뒤에 남은 패전의 흔적을 바라보며, 가엾게 죽은 채란과 생사를 알지 못하는 김응서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애가 탈 뿐이었다.

계월향을 본 고니시 히는 그 미색에 반해 그녀를 가까이 두려 했다. 계월향은 처음에는 싸늘히 그를 거부했으나, 그 순간 고니시 히의 음흉한 웃음소리에 겹쳐 적장의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김응서의 음성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계월향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마음을 바꾸어, 그에게 다가가 교태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미 죽기를 각오한 계월향은 적절한 계략을 세워 적장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이다.

평양성이 함락된 후 조선의 원병 요청에 따라 명나라 군사가 압록강을 건너와 큰소리치며 평양성에 입성했으나, 매복한 왜군의 기습을 받아 대패하고 겨우 잔병만 수습해 퇴각했다. 8월에 들어 왜군의 동태를 살피던 조선 군대는 2만 병력으로 평양성을 공격했으나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12월에는 왜군이 예상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안 명나라가 다시 이여송이 이끄는 4만8천여 명의 군대를 파병했다.

이런 가운데 김응서는 용강, 강서 등에서 흩어진 군사를 모집하여 평양성 밖 대동강 서편에서 진을 치고 평양 수복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계월향이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때 고니시 히의 애첩 노릇을 하며 신임과 사랑을 듬뿍 받아 놓은 계월향은 성 밖에 김응서의 군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미리 세워둔 계획을 실천하기로 했다. 며칠 후, 계월향은 고니시 히에게 같이 연을 날리고 싶다고 청하여 서문으로 그를 유인했다. 때마침 김응서가 정찰을 하며 그곳을 지나는 것을 본 계월향은 계략을 펼쳤다.

“장군님, 저기 지나는 이가 제 오라버니이옵니다. 이번 난으로 서로 헤어졌는데 이곳에서 보게 되었으니 부디 한 번만 만나게 해 주십시오.”

이미 성 밖의 김응서와 은밀하게 내통해 적장을 죽이고 평양성을 되찾자고 편지를 보내 자신의 계획을 알린 계월향은 적장을 향해 눈물 흘리는 시늉을 하며 고니시 히에게 간청, 그의 허락을 받아내 김응서도 성 안에 같이 있게 되었다.

얼마 후 성 안에서 큰 잔치가 벌어졌다. 드디어 계획대로 작전을 벌일 결정적인 날이 찾아온 것이다. 계월향은 다른 때보다 애교를 더 부려가며 왜장의 마음을 허술하게 풀어놓고 계속 술을 먹여서 만취하게 하였다. 계월향의 의중을 전혀 알지 못하는 왜장은 그녀가 주는 대로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이윽고 만취한 왜장은 세상 모르고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녀는 안팎의 동태를 살핀 뒤 김응서를 불러들였다. 결단의 순간이 온 것이다.

바람처럼 몰래 들어온 김응서는 칼을 뽑아 힘껏 내리쳐 단숨에 왜장의 머리를 베어 처단하였다. 계월향과 김응서는 왜장을 처단하고 서둘러 몸을 피하려 했지만, 함정에 빠져 우두머리를 잃어버린 사실을 왜병들이 뒤늦게 알고 두 사람을 뒤쫓기 시작했다. 성을 채 빠져나가기도 전에 발각된 두 사람은 왜군에게 겹겹이 포위되고 있었다. 더구나 도망 중에 다리를 다친 계월향이 김응서의 등에 업혀 있던 터라 김응서가 더 속력을 낼 수도 없었다. 김응서는 마음이 초조했다. 이러다가는 평양성 탈환을 보기도 전에 둘 다 잡혀 처단당할 것이 분명했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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