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앞이 깜깜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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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12 07:57  |  수정 2017-01-12 07:57  |  발행일 2017-01-12 제21면
[문화산책] 앞이 깜깜할지라도
전태현 <성악가>

독일 유학을 결정한 후 많은 지인들로부터 일단 언어를 잘해야 그 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 이는 독일에 가서 1년간은 오로지 언어에만 집중한 후 남의 도움 없이 모든 걸 할 수 있는 능력부터 기르라는 조언도 해주었다. 언어의 중요성을 느끼고 유학을 떠나기 전 어학원을 등록해 독일어를 공부했다. 열심히 해 어학원에서 나름 좋은 성적으로 과정을 끝낼 수 있었다.

드디어 출국날. 가족과 이별을 하고 많은 지인과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눈물, 콧물을 쏟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독일에 도착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어디로 나갈지 고민하고 있는데, 같이 비행기를 탔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한곳을 향했다. 자연스레 나도 그들 무리에 휩쓸려 어딘가에 도착했다. 입국심사장이었다. 드디어 열심히 공부한 독일어로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순서를 기다리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떠듬떠듬 독일말을 시작했으나, 독일경찰관은 밝지 않은 표정으로 째려 보며 뭔가를 몇 번 물어보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 그 경찰관도 답답했는지 영어로 물어보았다. 독일에서 머무르게 될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영어로 주소를 알려주고 새빨개진 얼굴로 공항을 빠져나와 집에 도착했다. 집에 와서도 입국심사장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

언어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어떤 이의 조언과 같이 독일에서 1년간 어학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빌리면 쉽게 끝날 일을 조금이라도 빨리 언어를 습득하고자 직접 부딪히며 고생했다. 그러던 중 비슷한 시기에 유학온 친구들과 나보다 조금 늦게 나온 친구들의 음대 입학 소식을 전해들으면서 조바심을 냈다. 하지만 며칠 고민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어학에 매진했다.

내 자신과 약속한 언어공부의 시간이 끝나고 유창하진 않았지만 남의 도움 없이 입시시험을 치르고 베를린국립음악대학에 입학했다. 수년 후 졸업과 동시에 뉘른베르크 국립극장의 전속솔리스트로 입단했다. 어느날 동료 성악가들과 어울리며 대화를 나누다 동료로부터 뜻밖의 기분 좋은 질문을 받게 되었다.

“태현! 넌 어떻게 다른 한국사람들에 비해 독일말을 그리 잘할 수 있지?"

그 친구의 질문은 독일에서 겪은 수많은 실수와 실패 그리고 인고의 시간을 한번에 보상해주었다. 나는 감히 가까운 지인들에게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던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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