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나라 꼴이 이런 이유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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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07   |  발행일 2017-01-07 제23면   |  수정 2017-01-07

조선 선조 때 오리 이원익(1547~1634)과 아계 이산해(1539~1609)는 영의정까지 지낸 대표적 인재들이었다.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위치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벼슬을 하는 동안 행한 처신이나 사후 평가는 확연히 달랐다.

예를 들면 이원익은 임진왜란 때 피란길에서 선조에게 올리는 음식을 자신이 먼저 시식했다. 독살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선조가 중국으로 망명하려 하자 결연히 반대하고 나섰다. 왕은 사직을 위해서 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원익의 선조에 대한 충성은 선조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 이산해는 이와 달랐다. 그의 충(忠)은 개인 선조에 대한 추종으로 분석된다. 그는 선조에게 무엇을 주장하며 왕을 설득하거나 왕에게 반발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선비들이 추구하는 이상보다는 권력유지 자체를 목표로 하는 정치가의 모습을 보였다. 공동선이나 공동체의 이상을 위해 분투하기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머리를 썼던 것이다. 그런 그였기에 선조의 총애를 받았다.

‘광해군일기’에 나오는 그의 졸기(卒記) 중 일부다.

‘이산해는 어려서부터 지혜롭고 총명하여 일곱 살에 능히 글을 지어 신동이라 불리었다. 자라서는 깊은 마음에 술수가 많아서 밖으로는 비록 어리석고 둔한 듯하지만, 임기응변을 할 때는 변화무쌍함이 귀신과 같았다. …그 마음의 술수는 대개 임금의 뜻을 받들고 영합하여 교묘히 아첨함으로써 먼저 임금의 뜻을 얻은 뒤에 몰래 역적이란 이름으로 남을 모함하였다.’

이랬던 이산해는 화려한 벼슬과 문화예술적 명성을 누렸으나 사후의 그에 대한 평가는 그를 기리는 서원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나고 있는 대통령과 대통령을 둘러싼 측근 및 고위 관료들의 행태를 보며 떠올리게 되는 역사 속 이야기다. 듣기 좋은 소리만 좋아하는 대통령에다 주위 측근이나 고위관료들이 하나같이 대통령의 눈치나 살피는 언행을 한다면 나라의 꼴이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 아니겠는가. 어떤 대통령이냐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나라에 충성하는 대통령 측근이 반드시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함을 절감하는 시절이다. 김봉규 문화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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