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분노를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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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03   |  발행일 2017-01-03 제31면   |  수정 2017-01-03
[CEO 칼럼] 분노를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가
박봉규 (서울테크노파크 원장)

임진왜란 초기 조선 육군이 총동원된 신립 장군의 군대가 충주에서 패하자 조정은 혼란에 휩싸였다. 탄금대에서의 패전보고가 올라오자 가장 당황한 사람은 바로 임금 선조였다. 정상적인 국왕이라면 전시비상내각을 꾸리고 도성수호의 결의를 다지는 동시에 전국에 선전교서를 내려 항전을 독려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선조는 서울을 버리지 않겠다는 전교를 내려 백성을 안심시킨 후 자신은 몰래 도성을 빠져나와 의주로 도망갔다. 임금이 자신들을 버렸다는 소식에 백성들은 분개했다. 왜군이 서울에 들어오기도 전에 궁궐은 자기 나라 백성들에 의해 불길에 휩싸였다. 이는 단순한 방화가 아니었다. 평소에는 백성들 위에 군림하면서 나라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을 것처럼 행세하더니만 정작 왜적이 침입하자 자기들끼리만 살 길을 찾아 나선 지배체제에 불을 지른 것이었다.

그 불이 지금 다시 광화문 광장과 전국 주요도시에서 촛불로 타오르고 있다.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저버린 대통령에게, 대통령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한 비선실세의 행태에, 한때는 권력 주위를 맴돌면서 출세와 자기이익을 챙기더니만 상황이 바뀌자 나는 모른다, 책임 없다로 돌변한 불나비들의 행태에 분노한 것이다. 대구경북의 경우에는 이 지역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된 대통령이었기에 실망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어느 시대나 통치자의 신임을 빙자하여 임금보다 더한 위엄을 누리면서 나랏일을 전횡한 비선실세들이 있었다. 역사는 최순실도 그러한 경우의 하나로 기록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이들 실세의 방자한 행태는 결국 상전인 국왕의 허물이 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허탈과 분노가 이들을 단죄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광화문의 촛불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서야 한다. 분노의 촛불을 넘어서 정치사회의 모든 면에서 국가운용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판짜기의 첫 단추가 되어야 한다. 멀리 갈 것이 없다. 현대사에서도 우리는 분노에만 휩싸인 나머지 그 다음 수순을 제대로 밟지 못해 역사가 준 기회를 놓쳐버린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80년 서울의 봄이 그랬고, 6·10 민주항쟁이 그랬다. 학생과 넥타이 부대의 힘으로 과거를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으나 새 시대를 여는 데는 실패하였다.

임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류성룡은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심정으로 ‘징비록’을 썼다. 그러나 혼란이 수습되자 징비록을 꺼내 읽고 대안을 마련하는 선각자들은 없었다. 불탄 경복궁도 무려 200년이 지나서야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오히려 이 책을 열심히 읽은 일본은 20세기 초 드디어 조선정복이라는 그들의 꿈을 이루었고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난날의 실패는 우리로 하여금 국민들이 더 눈을 부릅떠야 하며 더 끈기있게 진행상황을 지켜보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세력들이요, 시간은 언제나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광장의 민중은 목소리는 크지만 이를 제도로 정착시키는 데는 능력이 모자라는 반면 촛불에 저항하는 세력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끈질기다. 매서운 겨울바람 앞에 촛불이 꺼지기를 기다린다. 촛불이 꺼지면 그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옛 질서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광장의 함성을 제도로 담아내지 못하면 역사는 다시 반복될 것이다. 세월이 흐른 다음 또다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매달리고 더 진지해져야 한다. 2016년 겨울의 촛불이 결코 한바탕 한풀이 축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정유년은 지난해 위정자들이 잘못하여 허물어 버린 나라의 토대를 다시금 국민의 힘으로 되세우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박봉규 (서울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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