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칼국수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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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31   |  발행일 2016-12-31 제23면   |  수정 2016-12-31
[토요단상] 칼국수 한 그릇

변두리 골목길 칼국숫집은 주말 점심 때인데도 한가했다. 안쪽 구석에 남자 둘이 젓가락을 휘저으며 마지막 국숫발을 찾고 있었으며, 나는 광고전단 쪼가리를 뒤적이며 시켜놓은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한 무리의 손님이 들어섰다. 앞장선 사람은 초로의 60대 남자였고 부인인 듯한 여자와 아들 같은 젊은 남자가 뒤를 이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문이 다시 열리고 며느리로 보이는 여자가 열 살 내외의 남매를 앞세우고 입장했다. 모두 여섯이었다. 한눈에 봐도 단란한 삼대 가족의 외식이었다.

“사장님, 그동안 장사는 마 우짜 됐노?” 초로의 남자는 들어서자마자 호기롭게 주인을 찾았다. 나는 요란한 목소리로 거들먹거리는 저 초로의 행동이 참 다목적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주인을 향해 내가 이렇게 우리 식구들을 왕창 데리고 왔다는 유세였고, 또 하나는 가장으로서 오늘은 내가 한턱 쏘겠다는 자랑질 같은 것이었다. 거기에다 솔직히 한턱치고는 너무나 겸손한 한 끼가 되었다는 속마음을 스스로 상쇄하겠다는 의도도 들어있어 보였다.

그것은 아이들과 며느리의 표정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할아버지 집을 찾아와 피자나 치킨을 생각했을 터인데 웬 밍밍한 국수냐 하는 표정이었고, 며느리는 이 추위에 적어도 해물찜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눈치가 분명했다. 어쨌든 초로의 남자는 든든한 가장으로서 6천원짜리 국수로 그 열 배쯤 되는 허세를 부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여섯 명의 식구가 네 그릇을 시키는 바람에 옆자리에 앉아있는 내 속이 불안해졌다. 이 집은 양이 많아 혼자 다 못 먹는다는 말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앞에 놓인 국수 그릇에서 바지락껍데기를 수북하게 골라내자 반으로 줄어들고 마는 것을 보며 ‘이건 아닌데’ 하는 걱정이 들었다. 어린 남매이긴 해도 저런 덩치에 앞앞이 제 몫은 나누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 속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초로의 남자가 또 호기를 부렸다. “오늘 실컷 먹어. 파전도 하나 주문하지.” 그 소리에 옆에 있던 부인이 남자의 옆구리를 쑤셨다. 눈을 찡그리고 입을 웅얼거리는 것으로 보아 “만원이야, 만원!” 하는 것도 같았고 “집에 가서 해 먹으면 되지”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모습이 꼭 내 유년시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어린 시절, 그야말로 우리 집에 희귀한 일이 생기는 날이면 아버지는 우리 육남매를 시골 장터 중국집으로 데리고 갔다. 물론 보무도 당당하게 몇 걸음 앞장서 가는 아버지를 우리는 쾌지나 칭칭 하며 뒤따랐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같은 값에도 양이 철철 넘치는 뜨끈한 우동을 시켜 드셨고, 우리는 아무리 아껴 먹어도 게 눈 감추듯이 사라지는 짜장면을 싹싹 닦아먹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호기를 부렸다. “탕수육도 시켜줄까?”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어머니는 절대 그럴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먹다가 남기면 죽을 줄 알아”로 아버지의 허세를 막곤 했다.

옆자리 젊은 부부가 저희끼리 잠시 소곤거리더니 며느리가 일어나서 주방으로 갔다. “한 그릇 추가해 주세요.” 나지막하지만 또렷한 그 국수 한 그릇이라는 말에 내 마음이 그만 푸근해졌다. 초로의 노인은 텔레비전에 눈을 두고 있었다. 부인은 물수건으로 열심히 목덜미를 닦는 중이었다. 아이들의 눈은 냉장고의 사이다에 가 있었다.

식당 카운터 위에 달아놓은 텔레비전에서는 내일모레로 다가오는 새해에도 경기는 계속 나쁠 것이며, 서민들은 더 살기가 팍팍해질 것이고,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은 이제 코피 터질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홍억선 (한국수필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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