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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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30   |  발행일 2016-12-30 제43면   |  수정 2016-12-30
복잡미묘한 관계에 밋밋한 스토리텔링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

‘라 붐’과 ‘여왕 마고’의 시나리오 작가 다니엘르 톰슨이 15년간 공을 들여 연출했다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은 프랑스 제2제정 시절 작가와 화가로 일세를 풍미했던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의 애증어린 인간 관계에 초점을 맞춘 전기형 드라마다.

지미 카터(지에미 캇) 전 미국 대통령과 더불어 그 애꿎은 발음 덕에 불효자식(?)의 대명사로 불리는 에밀 졸라(에미를 졸라)는 19세기 자연주의 소설미학을 창출한 대표적 리얼리스트로 당대 숱한 추종자들을 양산한 졸라이즘(Zolaism)의 창시자다. 그는 20권의 대하 가족사 소설 ‘루공마카르 총서’를 통해 당대 프랑스 민중의 계층적 속살을 세밀히 파헤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나나’ ‘목로주점’ ‘제르미날’ 등의 작품은 모두 ‘루공마카르 총서’의 한 부분에 속한다.

영화는 세잔이 에밀 졸라의 소설 ‘작품’이 그의 신변을 원용해 자신을 비하하고 있다며 졸라에게 항변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작품’은 ‘루공마카르 총서’의 14편째 소설에 해당하는 것으로, 필생의 대작을 갈망하던 화가 클로드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그림 앞에서 자살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그림과 글짓기에 재능이 있던 세잔(기욤 갈리엔)과 졸라(기욤 카네)는 콜레주 부르봉(중등 과정) 시절부터 절친이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에다 편모 슬하의 어려운 환경에서 친구들의 따돌림을 받던 졸라에게 부유한 가정 출신의 세잔은 항상 든든한 방패막이였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고향 엑상프로방스를 떠나 파리에서 각자의 예술혼을 펼친 뒤부터 두 사람의 인생은 180도 전도되고 만다.

에밀 졸라가 먼저 명성을 얻으며 문단의 총아로 등극하며 경제적 기반을 쌓아간 반면, 폴 세잔은 천재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미술계의 주목을 받지 못해 어려움에 처한 데다 원래 사이가 좋지 않던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마저 끊겨 설상가상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이처럼 두 사람의 처지가 바뀌면서부터 평소 서로를 동경하고 무척 아끼면서도 냉혹한 평가와 비판을 서슴지 않던 둘의 관계는 복잡미묘하게 꼬여가기 시작한다. 그 도화선이 된 ‘작품’의 논쟁을 차치하고서라도 세잔과 사귀던 여인(가브리엘)을 졸라가 아내로 맞는가 하면, 가브리엘의 불임이 세잔과의 사이에 잉태된 영아의 낙태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다.

19세기 프로방스의 유려한 풍광을 재현한 화면은 더할 수 없이 고혹적이고 오르세미술관의 그림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한 회화 속 인물과 풍경은 사실감을 고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극적 장치 없이 밋밋하고 지루한 스토리텔링은 초로의 부부 4쌍만이 덩그라니 지키고 앉은 객석을 썰렁하게 한 주범임에 틀림없을 듯하다.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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