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충남 태안 청포대 별주부마을

  • 류혜숙 객원
  • |
  • 입력 2016-12-30   |  발행일 2016-12-30 제36면   |  수정 2016-12-30
‘별주부전’ 전설의 마을…용궁 그리다 바위가 된 자라를 만나다
20161230
자라바위. 자신의 충성이 부족해 토끼에게 속았다고 탄식하며 죽은 자라가 바위가 되어 바다를 향해 엎드려 있다.
20161230
자라바위의 꽁지에 올려져 있는 자라바위(덕바위)의 유래비.
20161230
노루의 꼬리를 닮았다는 노루미재. 용궁을 빠져나온 토끼가 육지에 내려 달아났다는 고개다.
20161230
노루미재 위쪽 정상 부근의 전망대. 별주부마을 모임터, 독살 문화관, 노인정이 함께 있다.
20161230
서해에서 가장 푸르다는 원청리의 마당같이 넓은 청포대. 썰물 때면 4㎞의 조간대가 펼쳐진다.

밀물 땐 250m·썰물 땐 4㎞ 모래사장
'마당같이 넓은 포구’ 원청리 청포대
엄청난 사구 모두 건축용으로 사라져
조수간만 差 이용 물고기 ‘독살’ 유명

용새골·묘샘 등 별주부전 관련 지명들
토끼가 자라 놀리며 사라진 노루미재
재 오르면 서쪽 바다·동쪽 마을 한눈에


완전한 밀물이었다. 모래사장은 하얀 새틴의 띠처럼 길게 놓여 있었고, 투명한 모래만큼 많은 흰 조개껍데기들이 바다의 풍요를 보여주고 있었다. 왜 이맘때면 바다가 생각나는지, 지천명에 이르면 알 수 있을까. 다만 막연히 떠오르는 것은 바다와 맞닿은 땅, 모든 해안의 흔들리는 땅은 언제나 땅의 끝이고 땅의 시작이라는 것. 그래서 흔들리며 보다 잘 설 수 있게 될 거라는 것.

◆푸른 바다 원청리, 넓은 포구 청포대

태안군 남면의 원청리. 서해에서 가장 푸른 바다라 하여 원청(元靑)이라 한다. 마치 처음 보는 서해인 듯 푸르다. 하얀 모래사장은 큰 활처럼 놓여 있다. 이 해변은 밀물 때면 250m 정도 너비의 모래사장이지만, 썰물 때면 4㎞의 조간대(潮間帶)가 펼쳐진다. 그래서 ‘마당같이 넓은 포구’라는 의미의 ‘청포대’라 부른다.

청포대 남쪽은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나간 마검포 포구로 이어진다. 북쪽으로는 달산포와 몽산포 해수욕장과 이어진다. 저 긴 모래사장을 달려 자동차들이 경주를 벌이고, 경비행기가 날아오르기도 한다니, 이 해변에서 경계란 것은 부질없다. 옛날 청포대에는 엄청나게 큰 사구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신두리 사구보다도 컸다고 한다. 그 많던 모래는 모두 건축용으로 사라졌다.

먼 바다에는 거아도, 울미도, 삼도, 지치도와 같은 섬들이 동동 떠 있다. 그보다 조금 가까운 바다에는 어린 바지락들이 꼬물거리는 어장이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있다. 그리고 보다 더 가까운 바다에는 독살이 있다. 독살은 V자 혹은 초승달모양으로 쌓아올린 돌담이다.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로 방식으로 돌발, 돌살, 석전, 석방렴으로도 불린다. 밀물에 휩쓸린 물고기가 독살에 들면, 썰물을 기다려 퍼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돌로 만든 살’이라 독살이라 하지만 어민들은 ‘독 안에 든 쥐’와 같다고 독살이라고도 한다.

태안 일대에는 100여개의 독살이 있었다고 한다. 독살은 20세기 이후 특히 1970년대 이후에 급속히 사라졌다. 어족 자원의 고갈, 어로 기술의 발달, 어업 환경의 변화라는 보편적인 이유도 있고, 새마을운동의 바람과 함께 건축용 자재로 하나둘 사라져 갔다는 구체적인 이유도 있다. 지금 청포대 앞바다에는 5개의 독살이 복원되어 있다고 한다. 가득 찬 밀물에 독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있다.

바닷가에 네 사람이 있다. 옷가지로 둘둘 싸여 나이도 성별도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가족으로 느껴졌다. 대화는 없었지만 흩어지지 않았고, 나란히 청포대 해변의 남쪽 끝으로 향한 뒤 솔숲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남긴 발자국 속에는 조개껍데기가 가득했다. 바다는 물러갈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물에 잠긴 독살을 그려보았고, 소박하고 영리하고 용감한 사람들을 생각했고, 독살에 물고기가 많이 들기를, 어린 바지락들이 잘 자라기를 기원했다.

◆노루미 또는 별주부마을

청포대 바닷가에는 밑동이 잠긴 바위 하나가 솟아 있다. 그것은 ‘덕바위’ 혹은 ‘자라바위’라 불린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를 찾아 육지로 올라왔던 ‘별주부전’의 자라라고 믿는다. 안내판에 ‘자신의 충성이 부족해 토끼에게 속았다고 탄식하며 죽은 자라’라는 설명이 새겨져 있다. 바위가 된 자라는 유배지의 신하가 한양을 향해 절하듯 용왕이 있는 바다를 향해 엎드려 있다.

원청리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토끼가 살았던 마을’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자라바위를 비롯해 지명도 여럿 남아 있다. 마을 입구의 아름드리 해송 숲은 용왕의 명을 받은 자라가 토끼의 간을 구하기 위해 육지에 첫발을 디뎠다는 용새(龍塞)골이다. 민박집과 펜션이 들어 차있는 마을에는 토끼가 “간을 떼어 청산녹수 맑은 샘에 씻어 감추어 놓고 왔다”는 ‘묘샘’이 전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충직한 자라가 더 좋았나 보다. 그래서 원청리의 또 다른 이름은 ‘별주부 마을’이다.

자라바위가 있는 해안의 뒤쪽에는 ‘노루의 꼬리를 닮았다’는 ‘노루미재’가 솟아 있다. 자라의 등에서 폴짝 뛰어내린 토끼가 “간을 빼놓고 다니는 짐승이 어디 있느냐”며 놀려 대고는 사라졌다는 곳이다. 이 고개의 이름을 따 원청리는 ‘노루미’라고도 하고, 청포대는 ‘노루미 해변’이라고도 한다. 제법 높이가 있는 노루미재를 오르면 서쪽에는 바다, 동쪽에는 마을이 환하다. 토끼는 재 넘어 이 마을에 당도한 뒤 어떻게 되었을까. ‘밤이면 미색과 풍류로 밤을 지내고, 낮이면 의원과 점쟁이에게 고칠 방도를 묻느라고 국력을 소진했다’는 용왕은 어찌 되었을까. 승상 거북, 영의정 고래, 해운군 방게와 같은 신하들은 어찌 되었을까.

노루미재 마루에는 높다란 건물 하나가 탑처럼 서 있다. 탑은 전망대이자 독살 문화관이고 별주부 마을 사람들의 모임터다. 원청리 노인정도 함께 자리한다. 신발 빼곡한 노인정에서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린다. 탑 마당으로 들어서는 노인께 독살을 물어보았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명료한 답이다. 때가 되면 썰물의 시간이 올 것이다. 잠시 기다려 볼까 생각하다 돌아선다. 밀물로 가득 찬 바로 지금이 가장 간절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때, 가장 치열한 기원의 때였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서울, 대전 방향으로 간다. 대전 지나 회덕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 251번 지선을 타고 당진 전주방향, 다시 유성 분기점에서 30번 고속도로 당진방향으로 간다. 당진 분기점에서 15번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군산방향으로 가다 서산IC로 나간다. 32번 국도를 타고 서산을 관통해 태안방면으로 계속 간다. 태안읍에서 안면도 방향 77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오른쪽에 원청리 청포대 해수욕장이 자리한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