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세모에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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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30   |  발행일 2016-12-30 제23면   |  수정 2016-12-30
[조정래 칼럼] 세모에
논설실장

다사다난(多事多難)이 올 한 해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안성맞춤이 없다. ‘이러려고….’ 후회와 착잡, 우울이 혼재하는 연말이다. 밤 거리는 오가는 사람 없이 한산하고 차량들도 귀가해 적막감을 더하며 을씨년스럽다. 자영업자들은 한밤이 되기 전에 간판 불을 끈 채 고객을 맞을 희망의 끈을 놓은 모습이다. 탄핵 당한 대통령의 처지와 삽상한 세모(歲暮) 풍경이 처연하게 겹쳐진다. 이래저래 어수선하고 마음 둘 곳 없는 와중 그나마 사무실로 도착한 몇 장의 연하장과 감사편지를 읽으며 새삼 위안을 삼고 감사한다. 홍덕률 대구대 총장은 해마다 장문의 편지글을 보내오는데, 학교에 대한 애정과 염려가 가득 배어 있다. 더할 나위 없이 유난했던 올 한 해 세파를 헤쳐나 온 홍 총장을 비롯한 애독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감사를 드린다.

뒤돌아보건대 올 한 해 우리는 참으로 소통과 공감에 목말라했다. 불통의 심화(心火)가 마침내 촛불로 타올랐고, ‘공감과 소통’은 건배사가 됐다. 알고 보면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역시 불통의 시간과 다르지 않다. 세월호 불감증을 치유하지 않고서는 세월호 이후 미래는 말해질 수 없다. 생때같은 산 목숨을, 그것도 어리디 어린 것들을 산 채로 수장시키고도 진실을 덮으려고만 하니, ‘국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엄중하게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해경은 해체되고 말면 그뿐이었고, 세월호 조사는 국가적으로 방해받았다. ‘시체 장사’ 등 유족들에게 향하는 악다구니는 인간성의 진보를 부정하게 한다. 가라앉은 세월호와 함께 진실은 여전히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아우슈비츠 이후, 세월호 이후에도 우리는 달라지지 않고 참회하지 않는 죽은 사회를 연명해 가고 있다.

적폐(積弊)는 또 그 얼마인가. 청산하고 버리고 가야 할 것들 투성이다. 내 안에 있는 군살과 공공의 적들도 가득하다. 망가뜨린 것들은 또 얼만가. 촛불은 꺼질 줄 모르고, 우리 사회의 가장 유식한 식자(識者)들은 청문회 자리에만 앉으면 무식자 ‘모르쇠’로 둔갑한다. 참으로 모를 세상이라더니, 그 꼴값에 딱 들어맞는다. 촛불의 명령은 적폐의 청산이다. 지금까지 시민의 혁명은 미완으로 미봉(彌縫)돼 왔다. 대충 마무리하는 속성, 은근과 끈기 부족 탓에 온정주의에 원칙을 양보해 왔기 때문이다. 편법과 무법, 무원칙이 난무하는 한 촛불은 더 가열하게 타오를 수밖에 없다. 시민의 혁명은 개혁으로 물꼬를 트고 수렴돼야 한다. 이른바 국가대개조다.

새해에 바꿔야 할 것들도 많다.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며 감회에 젖을 새도 없이, 한 살의 나이를 더하는 중압감은 생의 마무리처럼 무겁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영문학자이자 시인인 김종길은 이렇게 노래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와 노래와 일치하는 삶, 고고(孤高)의 경지와 생의 비의(秘意)는 애초에 비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범인의 경계 밖에 있다. 그곳이 바로 꽃자리다.

한 해의 마무리, 생의 마무리는 어떠해야 할까. 그 누구보다 열심인 한 샐러리맨은 만년에, 일상생활을 해 오는 과정에서 본의든 아니든 상처를 준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사죄를 하는 것으로 일생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평소 시답잖은 흰소리를 잘 하곤 하는 그(동생)에게 이렇게 진지한 면이 있었는지 놀랍기도 하지만, 말인 즉슨 정말 맞고 꼭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의 성경공부 역시 그러한 생활태도를 견지하기 위해서 하는 일로 여겨지는 만큼 꼭 득도(得道)하길 바란다.

그의 내공을 미리 빌려 나 또한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나로 말미암아 마음을 상했던 많은 분들, 연말연시 마음 크게 잡수시고 용서하셨으면…. 거창한 ‘세모(歲暮)’에다 ‘에’를 붙여 세필(細筆)의 부끄러움을 모면해 보려 한다. 날마다 발전을 더하는 내일을 다짐하며, 특히 글감을 제공해주시고 조언을 아끼지 않은 언론계 선배님들과 소재 청탁을 마다하지 않고 평가와 감상까지 꼬박꼬박 해 주고 있는 독서 애호가 후배께도 감사 인사를 올린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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