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조카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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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26 07:49  |  수정 2016-12-26 07:49  |  발행일 2016-12-26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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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조카가 결혼했다. 조금은 경건하고, 조금은 소박한 결혼식이었다. 조카 중에 첫 결혼식이어서 생전 안 입던 한복도 빌리고, 아이들은 사촌누나의 결혼을 핑계 삼아 양복도 갖춰 입는 등 모두 조금은 들떠 있었다. 물론 요즘의 여느 결혼식처럼 이런저런 준비에 비해 다소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빨리 끝나 버렸지만, 시간이 좀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은 남동생이 결혼하는 누나에게 축가를 불러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걸 꼼꼼하게 영상에 담는 첫째 조카, 우애 깊은 세 남매의 모습에는 그 아이들이 함께한 30여 년의 세월이 녹아 있다.

그들의 부모인 우리 형제는 그렇게 살갑지 않았다. 1960~70년에는 집집마다 형제가 많았고, 우리 집처럼 대여섯은 기본이었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제 밥숟가락 챙기느라고 다른 형제가 배를 곯는지 배가 부른지 크게 마음 쓰고 보살피며 살지 못했다. 그래도 남동생이 구슬치기하다가 구슬을 다 잃고 울면서 들어오면 양철통에 한 알 한 알 모아두었던 구슬을 깡통째로 들고 나가 동생 친구들의 기를 꺾어놓곤 했다. 내 동생이 밖에 나가서 맞고 들어오면 내가 맞은 것보다 더 분하고 억울해서 머리끝까지 성질을 내고 그랬다. 언니들도 나에게 그랬다. 자랄 때 특별히 더 끈적거리는 우애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기댈 언덕인 형제가 있어 늘 든든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각자 제 인생 살기 바빠지면서 일이 생겨도 얼굴 보기보다는 전화로 대강 해결하고 있다. 급기야 요새는 SNS에서 더 친해져버려 얼굴을 마주 보면 되레 할 말이 없어지는, 다소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친구들보다 더 속 이야기를 털어놓지도 않고, 같이 취미생활을 즐기지도 않는다. 그렇게 형제들이 따로 제 인생을 살다 짝을 만나 결혼하고, 어쩌다 만나도 짝들과 함께였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남이었던 그들로 인해 점차 진짜 가족이 되어 가고 있다. 그래도 어제 같은 성탄절에 축하한다는 문자를 남겨주고, 생일이면 전화해 주는 이들은 새 식구들이다. 식구가 늘어날수록 함께해서 더 돈독한 가족이 되어간다.

결혼하는 조카가 새롭게 이루는 가족들과 진짜 가족이 되길 바란다.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아무리 자신해도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는 누구든 힘없이 무너지고 흔들릴 수 있다. 다름에 놀라고, 실망하고, 그래서 흔들릴 때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또 아끼기도 하면서 시간을 함께하길 바란다. 충분히 함께하면서 공유한 시간을 많이 쌓을수록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다.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학교도 곧 방학이다. 요즘 아이들, 특히 형제가 없는 아이들은 한 달 가까운 긴 시간을 혼자 무엇을 하며 보낼지 궁금하다. 아니, 걱정이다. 부디 이번 방학에는 친구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학원에서 같이 있는 시간이 아니라 함께하는 동안 서로 다름을 알고 인정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 그 속에서 실망하고 싸우고 울기도 하면서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관계를 쌓길 바란다. 장성보 <대구 성서중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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