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정책 오류와 신공항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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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19   |  발행일 2016-12-19 제31면   |  수정 201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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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미·영 연합군은 이라크 바그다드로 진격해 사담 후세인의 24년 철권통치를 종식시켰다. 이른바 2차 걸프전이다. 하지만 미국이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나 테러조직과의 연계는 끝내 입증하지 못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도 없이 조급하게 감행된 전쟁이었다. 전쟁의 정당성이 훼손된 터라 지금까지도 세계는 ‘2차 걸프전’이 아닌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2차 걸프전이 이라크의 유전을 차지하기 위한 메이저 석유사와 무기제조업체의 음모에 의한 기획전쟁이라는 설(說)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더욱이 미국은 2차 걸프전에서 300t의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해 43만명이 이에 노출됐으며, 종전 후 참전 장병들은 암·두통 등의 질병에 시달렸다.

지난 7월 발표된 영국의 이라크 참전 보고서는 ‘불법 침공’이란 점을 명확히 했다. 영국 이라크 참전 진상조사위원회에서 7년의 조사 끝에 완성한 보고서는 도입부에서 “2003년 영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주권국가(이라크)에 대해 반대를 무릅쓴 침공과 전면적 점령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영국의 이라크전 참전이 잘못된 정보판단, 의도적 정보왜곡으로 점철돼 총체적으로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무장테러집단 IS(이슬람국가) 발호의 동인(動因)이 됐다는 점은 특히 뼈아프다. IS는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축출한 뒤 생긴 이라크의 권력 공백을 틈타 일어난 수니파 반란군이다. 당연히 미국이 이라크전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IS는 없고 수많은 생명이 IS에 난도질당하지 않았을 터이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이라크전쟁 사망자 3만8천625명이 애꿎게 희생될 이유도 없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위정자의 잘못된 판단이 얼마나 큰 재앙을 낳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다.

우리도 여론과 추세에 역주행하거나 정곡(正鵠)을 찌르지 못한 정책 오류가 허다하다. 해경 해체도 그중 하나다. 해경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해체되면서 신생 부처인 국민안전처에 흡수됐다. 해경이 독립 외청에서 안전처의 일개 본부로 격하되면서 인사·예산권도 예속됐다. 불법 조업 중국어선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해경 해체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때 급조된 국민안전처는 재난 때마다 허둥대면서 무능의 대명사로 낙인찍혔다. 박근혜정부는 나빠진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해경 해체 카드를 선택했던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의 주장대로 해경 해체가 최순실씨의 복안이었다면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지금 반추해보면 해체 대상은 해경이 아니라 전경련이어야 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재앙을 빚기도 한다. 0~2세 무상보육은 2011년 12월31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여야가 전격 합의했다. 정부와 면밀한 사전 논의도 없었다. 무상보육이 시행되면서 13만여명의 아이들이 어린이집으로 몰렸다. 집에서 키워도 될 전업주부의 아이까지 가세했다. 무상보육 지원 대상과 지원금액의 디테일을 소홀히 한 탓이다. 너도 나도 어린이집을 열면서 2011년 3만9천842개이던 어린이집은 2013년 4만3천770개로 급증했다. 보육교사의 질이 낮아지고 학대 어린이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버렸다. 정부는 지난 7월 뒤늦게 맞춤형 보육정책으로 방향을 일부 수정했다.

김해공항 확장안도 미래의 재앙을 부를 소지가 다분하다. 신설될 3천200m 활주로 1본으로 유럽·미주 등 중장거리 노선을 운항할 수 있는지 의문이고, 확장하더라도 2040년 연간 3천800만명의 항공수요를 감당할지도 미심쩍다. 10년 후, 20년 후 영남권 신공항을 백지화하고 김해공항 확장으로 미봉(彌縫)한 걸 두고두고 후회할 게 뻔히 눈에 보인다. 국가정책은 무릇 불편부당(不偏不黨)하지 않아야 하며 국민 편익의 관점에서 대승적으로 결정돼야 한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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