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동화적 상상과 어머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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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19 07:57  |  수정 2016-12-19 07:57  |  발행일 2016-12-19 제19면
[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동화적 상상과 어머니의 노래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달이 산을 넘어오면/ 숨이 차서/ 달의 얼굴빛도 점점 희어지고/ 가파른 산을 다 넘어와서 확 트이는 광명의 세계에/ 산들도 뒤척이며 눈떠보다가/ 짐승처럼 서로 포개지며/ 다시 눕지요/ 코를 박고 더 깊이 잠이 들지요/ 드르렁드르렁 산들의 코 고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지요/ 호시탐탐 밖을 노리던 산 짐승들도 꼼짝없이 어둔 나무 밑이나/ 굴속으로 다시 들어가며 웅크리고/ 더러는 서성거리며 서 있었지요/ 알 수 없이 바람에 쭈뼛쭈뼛 일어서던 털들이/ 밝은 달의 몸 속으로 연신 비치며 지나가는 것이/ 보였지요/ 밤에 달은 짐승들의 동태를 비추는 거울인가 봐요/ 달 속의 그림자들이 빠르게 움직여요/ 그림자 하나가 지금 막 호수 쪽으로 내려가서 달 속에서/ 용솟음치는 물이 보여요/ 지금 한 짐승이 새끼를 낳고 있나 봐요/ 달이 거꾸로 서서 피 묻은 새끼를 향해/ 물통째 좌- 좌- 물을 붓고 있어요’(박정남, ‘달 속으로 짐승들이 지나가고’)

‘어머니의 여든 잔치 끝에 나는 어머니가 부른 노래 속에 들어있는 상주 공검못으로 갔다 산을 넘듯 굽이쳐가며 마디마디 꺾이는 노래 속의 그 많은 고단함을 따라가서 고단함 끝에 피어나는 분홍 연꽃들과 바쁘게 움직이며 연밥을 따는 어머니를 만나고, 내 어머니의 처녀를 바라보며 못둑을 서성이는 젊은 청년인, 어머니의 연밥 따는 손을 잠시라도 멈추게 할, 지금은 죽고 없는 내 아버지도 만나고 있었다 지금 공검못 옛터는 남아있는 어머니의 생처럼 다 닳아 오그라들어 물이 빠지고 잎들도 시들어 줄기도 꺾인 채 검은 땅을 향하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노래 속에 나오는 공검못은 여전히 넓고 넓어 못 가득 연꽃들을 피우고 배를 띄워 연밥을 따라가는, 자식들의 고단함을 따라다니는 어머니의 고단함만큼이나 향기로이 연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어머니의 노래가 끝나도록 나는 다 듣고 있었다 …’(박정남, ‘어머니의 공검못’ 일부)

글감으로 가장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것을 찾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동화적 상상을 바탕으로 한 위의 시와 어머니의 노래를 그린 아래 시는 그것에 완벽하게 부합합니다.

특히 ‘달이 산을 넘어오면/ 숨이 차서/ 달의 얼굴빛도 점점 희어지고/ …/ 산들도 뒤척이며 눈떠보다가/ 짐승처럼 서로 포개지며/ 다시 눕지요/ …/ 드르렁드르렁 산들의 코 고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지요’라는 발랄한 상상은 섣달 그믐날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설화에 맞먹을 정도입니다.

‘마디마디 꺾이는 노래 속의 그 많은 고단함을 따라가서 고단함 끝에 피어나는 분홍 연꽃들과 … 어머니를 만나고, … 젊은 청년인, 어머니의 연밥 따는 손을 잠시라도 멈추게 할, 지금은 죽고 없는 내 아버지도 만나고 있었다’는 글의 이 광경은 또 얼마나 절묘합니까. 새로운 신화는 작가들의 손에서 탄생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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