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크리스마스와 ‘혼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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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17   |  발행일 2016-12-17 제23면   |  수정 2016-12-17
[토요단상] 크리스마스와 ‘혼밥’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독일의 대형슈퍼마켓 체인 에데카(EDECA)의 광고 하나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귀향(歸鄕)’이란 이름의 이 광고는 약 2분 분량으로 지난달 28일 처음으로 방영되었다. 다소 레트로(retro)한 톤의 이 화면은 백발의 한 노인이 크리스마스 만찬 준비를 위해 한껏 장을 보고 들어오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새 자식과 손자들의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다. 노인은 자식들의 가족사진이 담긴 크리스마스카드를 주워 벽난로 위에 올려놓고, 소시지를 자르며 녹음된 메시지들을 듣는다. “아빠, 올해는 바빠 못 갈 것 같아요. 내년에는 꼭 갈게요.” 이미 수년째 듣는 빤한 거짓말이다. 상심한 노인은 쓸쓸히 ‘혼밥’을 먹다가 이윽고 뭔가를 결심한 표정을 짓는다.

다음 화면에는 독일의 여러 대도시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성공한 자식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들은 문자메시지 또는 전보로 노인의 죽음을 전달받고 망연자실한다. 그리고 하던 일을 즉시 멈추고, 흐느끼며 하나둘씩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향으로 향한다. 집 앞에 도착한 검은 상복 차림의 자식들은 서로 얼싸안고 또다시 회한(悔恨)의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집안에 들어서자 뭔가 이상하다. 그들이 마주한 것은 불이 환하게 켜진 따뜻한 실내였고, 식탁 위에는 촛불과 함께 크리스마스 만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멋진 크리스마스트리까지 반짝이고 있었다. 순간 짠 하고 노인이 나타난다. “너희들을 전부 불러 모으려면 별수가 있었겠니?” 자식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손녀는 달려가 노인의 품에 꼭 안겼다.

죽은 줄 알았던 아비가 살아 돌아왔으니, 당연히 최고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벌어진다. 장남은 팔을 둥둥 걷어붙이고 칠면조를 자르기 위해 나선다. 나머지 자식들도 연신 노인과 맥주잔을 부딪치며 “프로스트(prost)”를 외친다. 웃음소리가 그칠 줄 모른다. 그러자 화면에 “이번에는 집에 오렴”이란 문구가 뜨며 광고가 끝이 난다.

에데카의 광고는 독일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유튜브에서 억대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리고 노인이 ‘죽음을 가지고 자식들을 속였다’는 설정 때문에 “너무했다”는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마주한 세대 간 단절과 혼밥 문제에 대해 불편한 조명을 해주고 있다.

독일 얘기지만, 세대 간 단절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많은 젊은이들이 직장이나 친구 심지어 반려동물까지 핑계 삼아 스스로 ‘혼밥족(族)’이 된다. 그리고 나이 든 가족들마저 혼밥족으로 내몰고 있다. 진보논객 진중권은 “같은 달력을 쓴다고 같은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의 집회 현장만 봐도 촛불집회와 맞불집회로 나뉘어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누리꾼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지나친 ‘혼밥사랑’을 꼬집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삼시세끼 모두 혼자서 밥을 먹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 좋아하는 최순실이가 와도 밥은 각자 따로 먹는다고 한다. 세월호 사고 다음날 팽목항을 찾았을 때도 조리사를 데리고 가서 혼밥을 먹었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녀는 가히 ‘혼밥의 여왕’이라 불릴만하다.

새삼스럽지만 혼밥이란 ‘혼자서 먹는 밥’이다. 어쩔 수 없이 먹어야만 하는 가정의 혼밥은 세대 간 단절을 가져온다. 그러나 대통령의 혼밥은 국정의 단절을 가져온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온 나라에 혼밥을 먹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으면 한다. 모든 가정에서, 모든 세대가, 웃고 떠들며 함께 더운밥을 먹었으면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노병수 (대구 동구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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