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맑은소리하모니카연주단

  • 조정래
  • |
  • 입력 2016-12-16   |  발행일 2016-12-16 제23면   |  수정 2016-12-16
[조정래 칼럼] 맑은소리하모니카연주단

‘맑은 하모니카 소리를 듣다.’ 지난 금요일(9일) 대구교육연수원에서 열린 ‘맑은소리하모니카연주단’의 제2회 정기연주회. 애초 음악은 물론 악기에도 문외한인 내가, 그것도 음악 공연장 문턱도 제대로 가보지 못한 젬병이 연주단과 연주를 평하는 것은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얼치기일지언정 감동마저 없지는 않았으니, ‘아, 맑은 소리’란 감탄사라도 연발할 수밖에. 7인의 장애인이 선사한, 예기치 않았던 신선함이 마음의 병이 돼, 그날 밤 대취(大醉)를 해보고 숙취에 정신줄을 내맡겨 봐도 나의 미욱함과 어리석음은 못내 감정의 찌꺼기로 남는다. 이어진 주말 함양 시골집 뒤 백운산(해발 1천278m)에 오르는 고행으로도 울적함은 풀리지 않았는데 하산길에 들른 고찰 상연대(上蓮臺)의 풍경소리가 정신의 명정(酩酊)을 퍼뜩 깨운다. 그래, 맑은 소리는 청아한 풍경소리다.

긴가민가 인사치레로 참석했던 연주회가 이렇게 긴 울림을 줄 줄 미처 몰랐다. 정서적으로 푸석푸석 메마른 내가 서서히 고조되는 하모니카 연주에 몰입될 줄은 차마 몰랐다. 대구성보학교 재학생과 졸업생 9명으로 구성된 장애 청소년 연주단. 2016년을 되돌아보는 서곡들과 ‘빛솔 합창단’의 축하무대는 새로운 노래(New Song)와 새 이야기(New Story)로 진입하기 위한 청자들의 마음에 주단(朱緞)을 깔았다.

클라이맥스는 영상과 이야기가 있는 3부 연주에서 작렬했다.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는 연주의 새 장을 여는 노래로, 시끄럽고 혼탁한 시대상에 찌든 우리의 일상을 위로한다. 이런 희망의 메시지는 ‘거위의 꿈’과 ‘바람의 빛깔’을 거치며 불가능을 가능케 할 꿈의 비상으로 진작(振作)되고, 평등한 세상과 마음의 개안(開眼)을 희구하면서 최고조에 이른다. 양쪽 눈가로는 저절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애써 감출 필요도 없고, 굳이 닦을 이유도 없다. 스스로 흘러 넘친, 저마다의 설움일까. 최루(催淚)는 무대 뒤 예술 감독들의 역량에 힘입은 바도 크다. 연민과 동정이 아닌, 이야기가 있는 음악과 영상이 빚어낸 공감의 파노라마였다.

연주가 준 가외의 선물도 빼놓을 수 없다. 맑은소리하모니카연주단의 연주를 계기로 장애인을 대면하는 나의 선입견과 관점을 교정하게 됐다. 지난해 제1회 연주회에도 초청을 받았지만 바쁘다는 핑계를 댔다. 왠지 불편할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평소 장애인들과 일면식 도 없는 처지에, 어느날 갑자기 친구가 된 듯 박수치고 가장된 가성(假聲)을 내지르며 가식에 빠지지나 않을까. 그럴 바에는 멀리서 보내는 격려가 더 솔직할 듯했고, 어쩌다 식사 값이나 지불하는 것 정도면 어떨까, 위안 삼기도 했으니. 장애인에 대한 막연한 연민은 실체 없는 우월감의 다른 표현일 터, 아직도 그 자의식과 자책감에서 자유롭지 않다. 마음의 짐을 한결 가벼이 한 그날 이후, 이제는 고백할 수 있다. 나는 장애인이다.

사회를 맡은 이도현씨(아나운서·TBC)는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좁혔다. 남다른 진행 능력이 돋보였기에 그게 가능했다. 연주자와 객석을 가득 메운 시청자들 사이에 흐르는 정적과 경직성, 그리고 어색함까지 눅이는 재주. 그 덕에, 단원들의 다소 딱딱했던 모습도 내년 연주회에서는 자유스럽고 개성적으로 변하리란 기대도 해볼 만하다. 다만 개인적 인연으로 참석했던 내가 신문사 직함의 내빈으로 소개되는 멋쩍음 등은 빼고. 의전상 VIP와 실제 VIP가 혼동되고 바뀌는, 본말이 전도되는 우리의 행사 모습과 판에 박힌 소개 관행은 옥에 티다. 예술적으로 하든가, 아니면 버리고 갔으면 하는 적폐(積弊)에 불과하다.

음악은 다양한 예술 장르 중 유일하게 ‘천국에 이르는 계단(Stairway to Heaven)’이라고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 시인의 이 갈파에 동감하며, 음악을 멀리해온 나 역시 나이가 들수록 소리를 가까이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맑은 하모니카 소리를 들려주고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라. 그리고 본인들도 재능기부란 의무감에서 벗어나 좀 더 즐기길 바란다. 맑은소리하모니카연주단, 파이팅!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