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촛불 그 이후…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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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14   |  발행일 2016-12-14 제30면   |  수정 2016-12-14
20161214
이춘호 주말섹션부 차장

촛불은 초헌법적인 거사
특권 없는 세상 위한 民意
누구 위한 불빛이 아니라
우리 모두 위한 불빛이니
소수의 의견도 포용해야


주머니가 없는 옷이 있다.

배냇저고리와 수의다. 생전에 우리가 입는 옷에는 모두 주머니가 달려 있다. 거기에 ‘욕심’이 담긴다. 그 욕심이 가슴으로 옮겨가면 ‘욕망’이 된다. 너와 나의 욕망이 공공선에 부합되고 소통되고 균형되는 것. 이게 자유민주주의의 요체다.

이번 촛불은 반헌법적이면서도‘초헌법적’인 거사로 보인다. “법치를 부정하는 그 어떤 특권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대의 요청이랄까. 우리의 법치가 그동안 얼마나 ‘강자독식’이었는지 촛불은 잘 안다. 청년백수, 비정규직 등 흙수저의 탄식이 특권층에 보낸 ‘사약’이기도 하다. 우린 비로소 자기 욕망을 100% 표현할 수 있게 됐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보복·테러하지 않을 정도로 성숙됐다. 촛불은 이제 정치의 범주를 넘어섰고 누구에겐 레저·패션·축제다.

지난 시절의 민의는 보복되고 학살됐다. 목숨을 걸어야 반체제 발언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무슨 발언도 다 허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습관적·정파적·선동적 촛불을 우리 모두 경계해야 된다. 촛불은 정의의 보루이지 정치의 보루는 아니기 때문이다.

촛불 민주주의를 넘어 ‘일상 민주주의’여야 한다. 일상이 촛불보다 더 무섭고 냉엄하다. 촛불은 성공했지만 자기 일상은 망할 수도 있다. 요즘 촛불만 호경기다. 일상은 ‘불경기’다. 자칫 일상의 실패를 촛불로 분풀이한다면 그건 ‘촛불 사망선고’다.

촛불은 차기 지도자의 일거수 일투족도 지금처럼 감시해야 된다. 돈·학력·취업 때문에 절망하는 사람이 없게 하고 ‘불로소득 제로국가’를 만들어야 된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 모두가 지고지순한 것도 아니다. 파렴치하고 패륜적인 사람, 특권을 비판하면서도 더 특권적으로 사는 인사도 있을 것이다. 촛불 시민이라면 자기 일상도 잘 성찰해야 된다. 누굴 심판했듯 그 정신으로 저 자신도 잘 성찰해야 된다. 우쭐해진 나머지 ‘촛불은 절대적이고 무소불위’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자칫 권위주의 촛불이 될 수 있다. 촛불은 누구가 아니라 모두의 몫이기 때문이다. 탄핵 반대를 외치는 보수의 소수이견까지도 배려·포용하는 불빛일 때 더 미래지향적이고 더 숭고하게 번져갈 것이다.

촛불이‘억측’의 산물이어서도 곤란하다. 모두가 공인할 수 있는 ‘사실(事實)’ 위에서 타올라야 된다. 우기고 주장하는 건 너무나 쉽다. 하지만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진실을 밝히는 건 너무나 어렵다. 악의적 여론일수록 어떤 사실을 왜곡하는데 채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스마트폰에 힘입은 SNS 세상인 탓이다. 촛불이 주장·의견·억측·선전·선동·루머에 편승하면 ‘비극의 불’이 될 수 있다. 한국이 그런 지정학적 위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상 최악의 변수이기도 한 ‘북한’ 때문이다. 설상가상 북한 옆에는 중국과 미국이 저승사자처럼 호시탐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을 대입시키면 그 어떤 질서도 무질서로 파괴된다. 이게 우리의 운명이니 어쩌랴! 북한 앞에선 진보조차 사생결단적으로 갈라진다. 심지어 일부 보수단체는 촛불을 간첩의 소행으로 단정한다. 다른 변수 앞에서는 타협이 가능하지만 북한이란 최악의 변수 앞에선 서로 저주하는 보수와 진보다.

솔로몬이라도 절대 풀지 못한다는 남북문제. 우리 헌법은 북한을 ‘적(敵)’으로 단죄한다. 북한도 우릴 적으로 단죄한다. 이게 현실이다. 적으로 상호 부정하는 남과 북이 굳이 통일할 필요가 있을까. 북한 주민하고만 통일하고 김정은 정권과는 전쟁을 해야 될까. 그럼 그 정권이 우릴 가만둘까. 촛불은 희망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지금 정국은 절망으로 가는 것 같다. 광복에서 6·25전쟁 어름의 좌우갈등 시국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북한, 그리고 침몰하는 경제를 생각하면 탄핵은 ‘조족지혈’ 아닌가. 촛불이 대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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