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국민의 힘을 이길 권력은 없다

  • 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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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12   |  발행일 2016-12-12 제31면   |  수정 2016-12-12
[월요칼럼] 국민의 힘을 이길 권력은 없다
김진욱 고객지원국장

2004년 3월12일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날. 지금도 필자의 뇌리에 남아있는 그날의 장면은 탄핵소추안이 통과한 후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절규하는 TV속 모습이다.

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김근태 의원을 비롯해 유시민, 임종석 등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울부짖는 모습에 나도 함께 분노했다. 난 노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성향도 아니었다. 정치적 스펙트럼으로 따지면 난 보수다. 하지만 12년 전 봄,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는 건 의회권력이 국민을 무시한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한 건 맞지만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고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뿐 아니라 많은 국민이 그렇게 생각했다. 당시 여론조사로는 국민의 65%가 탄핵에 반대했다. 그런데 오만한 의회권력은 민의(民意)를 거스르는 폭거를 저질렀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수많은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탄핵 무효를 외쳤다. 민의를 거역한 탄핵 주도 정치인들은 그해 4월 열린 총선에서 줄줄이 낙선해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거리에서, 그리고 투표로 국민의 힘을 보여준 것이다. 그 이후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을 했지만 탄핵을 할 정도는 아니다’라며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국민의 힘이 인정된 것이다.

2016년 12월9일, 12년 전 탄핵 현장에서 한나라당 의원으로서 환하게 웃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다. 2004년 국회의장석을 점거했다가 국회 경위에게 끌려나갔던 정세균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이날은 국회의장석에 앉아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의 가결을 선포했다. 12년 전처럼 국회의장석을 점거하는 의원도 없었고, 오열하고 절규하는 의원도 TV로는 보이진 않았다.

이날 조간신문에 나온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는 국민의 78.2%가 탄핵을 찬성한다는 것이었다. 80%에 육박하는 국민이 원하는 것과 다른 결과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국민의 힘에 대항하는 오만함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국민의 힘에 더욱 무게를 실을 것으로 난 믿는다. 1979년 10·26사태로 아버지를 잃고 청와대에서 쫓겨나왔던 박근혜 대통령은 또 한번 타의로 청와대에서 나올 비운(悲運)에 처했다. 국민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우리나라 헌정사(憲政史)에서 두 번 경험한 탄핵안 통과는 국민의 힘으로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낸 것이다.

내가 처음 체험한 국민의 힘은 1987년 6월항쟁 때다. 당시 스물네 살이던 나는 그 시대 다른 젊은이들처럼 시위대 속에 있었다. ‘넥타이 부대(넥타이를 맨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시위에 합류했다고 붙은 명칭)’까지 거리로 나와 국민의 힘을 보여줬을 때, 그렇게 원했던 직선제 개헌은 이뤄졌다. 국민의 힘으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밝혔던 호헌(護憲) 방침을 철회시킨 것이다. 군사정부 시대에서조차 국민의 힘은 대통령 권력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국민의 힘은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올 때만 눈에 보인다. 국민이 원하는 것이 이뤄지면 광장으로 나왔던 평범한 국민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통과됐으니, 촛불을 드는 국민수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광장의 함성은 없었던 것처럼 잊어진다.

거리로 나오지 않더라도 국민의 힘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실제 발휘돼야 한다. 방법은 촛불 대신 투표다. 지금부터는 차기 대권을 꿈꾸는 잠룡들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국민의 힘을 잊고, 국민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언행도 나타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서, 또 불쌍해서 대통령으로 뽑아준 지난번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면 탄핵되는 대통령이 또 나타날 수 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언론의 검증을 눈여겨보고, 냉철하게 후보를 봐야 한다. 그렇게 하면 거리로 나오지 않더라도, 국민의 힘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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