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대통령님 고맙습니다”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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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7   |  발행일 2016-12-07 제30면   |  수정 2016-12-07
20161207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부끄러운 대한민국 민낯
“여기에서 멈출수는 없다”
국민 촛불 들고 거리나서
국가 개조 전화위복 계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표결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지만,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박 대통령과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꾸는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명박정부에 이어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전 10년 집권의 김대중·노무현정부와 비교 아닌 비교가 돼 왔다.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의 논리 차이도 있겠지만, 4명의 대통령이 살아온 길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치인, 법조인, 사업가, 대통령의 딸이란 타이틀 외에도 이들에게선 뭔가 다른 이미지가 연상되고 국정 또한 당시 대통령의 색깔에 따라 달라졌다.

이 중에서도 박 대통령이 살아온 길은 남달랐다. 이런 맥락에서일까, 최순실 사태를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상위 5%, 아니 상위 1%인 그들만의 리그에 박 대통령이 40여년이나 끌려다닌 건 아닌지 되묻고 싶다.

박 대통령은 집권한 이후에도 최순실 일가에 의해 국정을 농락당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국정농단이란 일말의 의심조차 없이 최순실을 중심으로 한 일당의 행위를 국가를 위한 정책으로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최씨 일가가 연출한 각본에 따라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 이후 내리 5선의 국회의원에 이어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박 대통령으로서는 최순실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연민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박 대통령 스스로 무덤을 팠고, 장·차관 인사권까지 휘두르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최순실에 대해 정부나 청와대 인사 누구 하나 제동을 걸지 못한 것이 결국 박 대통령 탄핵이라는 현 사태에 이르게 만들었다. 심지어 박근혜정부 관료와 청와대 인사들은 농락당한 것을 넘어 최순실을 ‘상왕(上王)’으로까지 모신 정황도 드러났다.

언론을 통해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호(號)는 국민의 희망과는 무관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항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최순실 사태가 터지지 않았다면 박근혜정부의 실상은 일부 세력의 입 안에 꽁꽁 숨은 채 베일에 가려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른다.

정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최순실 사태. 이번만큼은 반드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꿈도 펼쳐보지 못한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정치적 사안으로 변질돼 우리 사회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했던 과거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국가와 나라에 대한 희망이다. 주말마다 서울과 대구 등 전국적으로 펼쳐진 촛불집회는 국민의 힘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국정이 농락당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국민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줄서기에 급급했던 정치권에 대한민국의 주인이 ‘국민’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계기도 됐다.

자비를 들여 구입한 촛불을 집회 현장에서 나눠주고 종이컵을 전하고, 자발적으로 휴지를 줍는 일조차 대한민국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이 바로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이번 촛불집회는 어느 순간부터 만연했던 우리 사회 내에 불어닥친 엄청난 경쟁심, 불공정한 경쟁, 비도덕적인 것이 정의를 파괴하는 행태, 거짓말이 판치는 잘못된 세상을 바꾸는 단초가 됐다. 나보다는 우리, 개인보다는 국가가 먼저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경찰들을 향한 쇠파이프나 국민을 향한 경찰의 물대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이었다.

남은 몫은 정치권의 역할이다. 국민들이 품은 대한민국의 희망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받들어 국가 대개조에 나서느냐는 오로지 국회의원들의 몫으로 남게 됐다. 국회의원들은“이참에 국회까지 해산시켜 대한민국을 확 바꿔야 한다”는 국민의 명령을 명심해야 한다.

임성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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