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대통령의 마지막 길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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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5   |  발행일 2016-12-05 제30면   |  수정 2016-12-05
20161205

서문시장 방문은 작별인사
퇴진로드맵 공 넘겨받은 朴
이번 주가 운명의 갈림길
毒手, 暗數의 유혹 떨치고
正手를 둬야 촛불 꺼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주 서문시장 화재 현장을 찾았다.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또는 중요한 결단을 앞두고 찾던 곳이다. 그러나 화염에 모든 재산을 잃고 망연자실한 상인들은 더 이상 ‘박정희 대통령의 딸’을 반기지 않았다. 그토록 애정을 쏟아 아버지의 뒤를 잇게 했건만 오히려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해버린 데 대한 실망과 분노를 표출하는 상인들이 많았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려고 왔느냐는 말도 들렸다. 국정에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는 박 대통령이 서문시장을 찾자 야권에선 곤경에 빠진 처지에서 다시 지지층을 결집해 보려는 시도 아니냐는 분석을 내놨다. 10여 분 동안 스쳐가듯 화재현장을 방문한 데에 그런 정치적 속셈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 준 상인들이 어려움을 당했으니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한 방문이었다고 본다.

박 대통령은 지난주 3차 대국민담화에서도 국민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듯이 느껴지는 말을 했다. 1998년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된 이후 18년 동안 국민과 함께했던 시간은 더없이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술회했다.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사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말을 하는 바람에 의미가 깎였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도 했다.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는 국회의 결정에 맡겼다. 자신의 거취를 국회로 떠넘기고 스스로 퇴진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쏟아지긴 했으나 대통령 스스로 임기 단축을 언급한 건 처음이다. 공을 넘겨받은 국회(정치권)는 감당하기 벅차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 3당 대표들이 모여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여당과의 협상 거부를 선언했지만 각자 속내가 달라 우왕좌왕했다. 국회에서의 탄핵 표결 날짜가 12월2일→5일→9일로 오락가락하다 결국 9일로 미뤘다. 당초 야당과 함께 탄핵을 추진하던 여당 비주류도 강경파(유승민)와 온건파(김무성)로 갈라졌다.

새누리당이 내년 4월 말 대통령 사임→6월 말 대선을 만장일치 당론으로 정했지만 야당은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다. 결국 야당발(發) 탄핵행(行) 열차와 여당발 퇴진행 열차가 동시에 출발했다. 갈림길은 모레, 7일이다. 비주류 온건파는 이날 오후 6시까지 박 대통령이 4월 말 퇴진 로드맵을 밝히지 않을 경우 야당이 추진하는 탄핵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비주류 강경파는 이 경우에도 책임총리 같은 국정운영의 주체가 명시되고 야당이 이를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로선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선언한 야당이 탄핵 외엔 어떤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을 태세다. 이런 상황에서 공은 다시 박 대통령에게로 넘어갔다. 어떤 선택을 할지에 따라 자신의 운명, 보수의 길뿐 아니라 나라의 명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제(3일)도 전국에서 켜진 광장의 촛불이 횃불이 될지, 국민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스스로 꺼질지가 갈린다.

‘독수(毒手)’나 ‘암수(暗數)’의 유혹에 빠지면 안 된다. 국민들이 곧바로 알아차리고 횃불을 든다. 야당의 탄핵 열차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모든 걸 내려놓았다는 말을 실천하려면 ‘정수(正手)’를 둬야 한다. 두 가지다. 하나는 4월 말 퇴임을 직접 약속한다. 조금 앞당기면 더 진정성을 보일 수 있다. 그러면 4월 말까지 국정운영의 주체는 누가 돼야 하는지가 남는다. 박 대통령은 이미 야당에서 책임총리를 추천해 달라고 제안한 바 있다. 이를 유효하다고 천명한다.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임기를 정리하고 다음 대선을 공정하게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민심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후 여당을 중심으로 개헌론에 불을 붙이는 건 정치권의 몫이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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