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우리가 이러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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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5 07:53  |  수정 2016-12-05 07:53  |  발행일 2016-12-05 제15면
[행복한 교육] 우리가 이러려고…

3학년들이 과학시간에 부피에 대해 배우고 있다. 아이들에게 각자 가진 그릇에 물을 많이 담아 오라고 한 뒤에 자신의 물이 가장 많다는 것을 적극 설명해 보라고 한다. 아이들은 저마다 근거를 대며 설명을 한다. 하지만 근거가 부족하면 우기게 되고, 우기다 보면 소리 지르고, 말이 안 먹힌다고 화를 내고, 결국 싸우는 경우가 있다. 일부 소심한 아이들은 이런 불상사가 싫어서거나 자신 있게 설명을 못하거나 해서 쟁점에서 피해 버린다. 그래서 이런 수업을 할 때는 미리 피하기와 우기기, 설명(설득)하기에 대해 정리해 주고 시작한다.

아무튼 주관적인 설명이 끝난 뒤에 모둠에서 어느 그릇의 부피가 가장 큰지를 정해 두고 누구나 인정하도록 객관화하기 위해 측정 도구인 눈금실린더를 이용한다. 예상이 맞은 아이들은 환호하고, 빗나간 아이들은 실망을 한다. 하지만 이내 아이들은 객관적인 잣대를 인정하고 깨끗하게 승복한다. 이 수업의 핵심은 보이는 대로, 생각한 대로, 느낀 대로 판단하는 주관적인 생각을 누구나 인정하는 객관적인 잣대로 보자는 것이다. 우리 삶에는 주관적인 생각이나 판단도 중요하지만 객관적인 사실과 그에 대한 해석이나 판단이 중요한 때가 많다. 주관을 버리고 객관화해 나가는 것을 돕는 공부가 수학이나 과학이다. 물론 인간이 알아낸 수학적이거나 과학적인 사실 또한 세상의 모든 지식은 아니다.

마침내 박근혜표 역사 국정교과서가 등장했다. 교육부 장관은 편향되고 이념적이고 비전문가들이 만들었음에도 객관적인 사실에 따라 올바르게 썼다고 누구나 다 아는 거짓말로 꾸며 두고는 우기고 있다. 심지어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벌주겠다고 한다.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그 해석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시대가 변하면 다르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시대에, 그것도 미래세대에게 이 정부는 멀쩡한 검인정 교과서들을 버리고 국정교과서 하나로, 하나의 해석으로만 가르치라고 한다. 무지막지한 국가폭력이다. 그런데 지금 대구·경북 교육감들은 박근혜표 교육정책을 순순히 따른 대가로 시·도교육청 평가 1등을 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해야 할 때임에도 역사국정교과서를 놓고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단 한 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어떻게 단 한 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 수가 있을까? 사람이 아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어머니와 형제들 앞에서 떨렸고, 십자가 앞에서는 죽고 싶지 않았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 같은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사심과 사익에 흔들린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에게 득이 될까, 무슨 불이익이 없을까 자기 검열을 하다 지친다.

그런데 이 말을 한 18대 대통령은 어린 시절 18년을 대통령의 딸로 청와대에서 살았고, 18년을 국회의원으로, 대통령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어떤 국민들도 정치인이 사심이 없다고 믿지 않는 것이 상식임에도 자신은 오로지 공익만 추구했다고 하니 반신반인이라 해야 할 지경이다. 우리는 이렇게 주관적인 생각으로만 살아온,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만 믿고 살아온 사람에게 이 나라를 맡겼던 것이다. 특히 대구·경북은 맹종하다시피 살면서 긴 세월 집단 도취상태였는지도 모른다.

400년 전 중세시대에 지구가 둥글다거나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말했던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는 극소수였다. 본 대로만 믿던 권력들 앞에서 사실을 말하고도 목숨을 빼앗기기도 했다. 독립운동 세력과 민주주의 세력들은 오랜 시간 예언자로, 소수자로 살아왔다. 어쩌다가 10년간 국가권력을 맡은 적도 있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돈 많고 힘센 자들이 지배하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줄을 서야만 살 수 있다고 믿으며 한 편처럼 살다가 지금 이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지금 우리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90%의 을(乙)들이 일어선 촛불광장에 서 있다. 그 어떤 분석가도 예측하지 못한 정세이다. 각각의 마음속에서 꺼져가던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와 평화에 대한 작은 믿음이 거대한 객관적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가 이러려고 오랜 세월 참고 싸워왔나 보다. 우리 국민들은 그동안 숨겨왔던 민주주의에 대한 막막했던 주관적 마음을 객관적인 현실로 구체화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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