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이렇게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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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3   |  발행일 2016-12-03 제23면   |  수정 2016-12-03
[토요단상] 이렇게 사는구나
홍 억 선 한국수필문학관장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 나름대로는 보고 들은 것이 제법 있다고 생각해 왔다. 비록 구석진 시골이지만 관리자가 되어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고, 두루두루 다녀보아서 어느 정도 세상살이를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주말 서울 나들이에서 참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다양하고, 있는 집 없는 집의 계층도 그리 단순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사실 청첩장이 왔을 때부터 살짝 느낌이 다르긴 했다. 바쁜 일정 중에도 왕림해 주십사 하는 문구 속에 당신은 우리의 잔치에 축하객으로 선정되었다는 뉘앙스가 숨어 있기는 했다. 그리하여 기쁜 마음으로 찾아간 결혼식장은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었다. 으레 ‘그 복잡한 곳에 차를 가져가야 하나’ 하는 평소의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차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어디로 숨었는지 띄엄띄엄 눈에 띌 뿐이었다. 이 호텔 예식장은 한 층에 한 팀만 받는다고 했다.

식장 안은 관현악의 합주 속에 더없이 평온하였다. 안내원의 섬세한 손길에 따라 지정석에 앉았다. 만장 같이 넓은 자리에 손님은 이쪽저쪽으로 나뉘어 200명 남짓 될까 싶었다. 그때부터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얼른 부조를 하고 혼주를 만난 뒤 식당에 가서 허겁지겁 음식을 담아 먹고 다음 볼일을 보려던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이런 결혼식은 자리를 지키며 순서에 따라 꼼짝없이 세 시간 동안 잡혀 있어야 된다고 했다.

식장이 어떻게 꾸며져 있고,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며, 테이블 위에 음식이 어떻게 차려지는지에 대해서는 짧은 필설로는 적을 수가 없겠다. 다만 처음 접해보는 풍경에 입안에서는 수시로 ‘햐, 햐. 이렇게도 사는구나’ 하는 탄성이 거듭거듭 새어 나왔다. 그렇다고 행사의 주인 되는 분이 무슨 재벌가도 아니요, 권력자도 아니요, 연예인도 아니다. 그저 평소에 가까이 지내는 이웃이라는 게 혼기에 찬 자식을 둔 나의 마음을 죄어 왔다.

예식을 마치고 다음 일정으로 찾아간 지인의 아파트는 예술의 전당 앞에 있었다. 아파트 입구는 소박하게도 노란 국화들로 잔잔하게 단장을 해놓았다. 그러나 출입문에 들어선 순간 그 국화꽃들은 분명 위장일 거라고 단정해 버렸다. 1층 로비는 어느 고급 호텔의 잘 꾸며진 안내 데스크 못지않았다. 검은 색 슈트를 입은 젊은 직원은 방문록을 작성하고 정중하게 엘리베이터까지 안내를 맡았다. 미동과 소음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또 한 번 내 눈이 요동을 쳤다. 한 층에 네 가구가 산다는 복도는 조금도 과장 없이 천장만 조금 높이면 배드민턴을 칠 수 있을 만큼 넉넉했다. 매끈하게 잘 닦아놓은 대리석은 어느 한 군데도 턱이 진 곳이 없이 집안까지 일자로 연결되어 있었다.

우면산이 보이고, 예술의 전당이 내려다보이는 지인의 서재에 마주 앉았다. 그 멋진 배치에 내 입에서는 또 ‘햐, 햐. 이렇게도 사는구나’ 하는 탄성이 새어 나왔다. 물론 지인은 무슨 재벌가도 아니요, 권력자도 아니요, 유명인도 아니다. 평소에 가까이 지내는 문단의 선배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잠시 뒤 안주인이 차를 들고 왔다. 단정하게 다듬은 올림머리가 무척 세련되어 보였고, 아라베스크 무늬인 듯한 원피스 위에 얇은 카디건은 어디서 구했을까 싶었다. 조용하게 찻잔을 나누어 내려놓는 손길에는 품위가 배였다. ‘그래 이집은 또 이렇게 사는구나.’

늦은 밤길,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가 지친 몸을 힘겹게 끌고 올라갔다. 현관문을 열자, 아내가 쥐어뜯은 것처럼 산발한 머리를 긁으며 거실로 나왔다. 헐렁한 ‘몸뻬바지’에 지난번 주민달리기 때 공짜로 얻은 허연 러닝셔츠를 입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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