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가려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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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2   |  발행일 2016-12-02 제43면   |  수정 2016-12-02
두 아역배우(‘수린’ 신은수-‘성민’ 이효제) 신체적 부조화가 리얼리티 희석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가려진 시간
[윤정헌의 시네마 라운지] 가려진 시간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엄태화 감독의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 ‘가려진 시간’은 130분의 러닝타임 내내, 성인의 세상에선 가려져 있는 동심의 이데아를 줄기차게 지향한다. 강동원을 보러온 건지 영화의 이러한 지향점에 공감해서인지 평일 오전 극장엔 수능 휴업 중인 고3 여학생이 드문드문 눈에 띈다.

재혼한 엄마를 교통사고로 여의고 의붓아버지 도균(김희원)에게 이끌려 화노도로 이사온 수린(신은수)은 이곳에서 보육원 출신의 동급생 성민(이효제)을 만나 특별한 교제를 하게 된다. 초등 6년 동갑의 소년소녀는 부모 없는 공동의 공허감을 아이콘 형상의 음어로 소통하고 서로 위무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외딴 폐가를 아지트 삼아 영혼 어린 대화를 나눠가던 이들 앞에 곧 큰 시련이 닥치는데 친구들과 공사장 발파 현장을 구경갔던 날, 불의의 사고로 수린만이 겨우 살아서 돌아오고 성민을 비롯해 태식(김단율)과 재욱(정우진)이 행방불명된 것이다. 그것은 공사장 부근 산 속 동굴에서 발견한 정체불명의 형광알을 깨부순 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며칠 뒤 수린의 앞에 웬 청년(강동원)이 나타나 자신이 성민이라는 기상천외의 주장을 하는데 놀랍게도 그는 둘만의 음어로 기록된 비밀일기장을 가지고 있다. 일기장 사연을 통해 알이 깨진 후 타인의 시간은 정지되고 그들(성민, 태식, 재욱)만의 시간이 흘러 20대 청년이 되었음을 알게 된 수린은 유괴범으로 오인돼 쫓기는 성민을 도와주며 그들만의 가려진 시간 속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전작 ‘숲’(2012)과 ‘잉투기’(2013)를 통해 기발한 상상력을 실험해 왔던 엄태화 감독은 ‘가려진 시간’에서도 판타지에 멜로를 섞어 우리 시대가 염원하는 마음의 고향을 찾아 나선다. 그리하여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리는 순수와 열망, 조건없는 신뢰와 사랑의 심연을 파헤쳐 보인다. 영화는 리얼리즘의 전체 틀 속에 ‘시간 정지’란 환상적 MSG를 뿌림으로써 일견 남미문학권에서 성행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행태를 엿보인다.

군사독재가 횡행하던 남미제국에서 비판적 주제를 은유하면서 대중에게 흥미롭게 다가가기 위해 사용된 이 사조적 기법은 ‘가려진 시간’에선 수린과 성민의 앳된 로맨스를 숭고하게 형상화하는 데 요긴하게 응용되고 있어 주목된다. 그런 한편, 사춘기 첫 사랑의 성장통을 판타지적 설정에 덧붙여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모양새의 성년식 스토리(initiation story)로 읽히기도 한다. 허나 동갑내기 소년소녀로 설정된 수린과 성민의 배역을 맡은 두 아역배우, 신은수와 이효제의 신체적 언밸런스(실제 네 살 차이)는 영화의 리얼리티를 희석시키고 있어 안타깝다.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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