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신드롬’ 말고 ‘외상 후 성장 신드롬’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6-11-28 07:49  |  수정 2016-11-28 09:27  |  발행일 2016-11-28 제17면
20161128

요즘처럼 많은 국민들이 뉴스를 열심히 보는 때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에 놀라고 또 분노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그나마 조금씩 찾아가던 국민들의 평상심은 다시 뿌리째 흔들려 버렸습니다. 향기박사는 우리 국민들이 이번 일로 다시금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를 경험하게 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감당하기 힘든 사고 등으로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으면 나타나는 질환입니다. 주로 직접 경험한 당사자에게 나타나는 질환인데, 평범한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사건들, 예를 들어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 화재, 전쟁 혹은 커다란 비행기 사고나 선박 사고를 경험한 사람은 물론 개인적인 신체적 폭행, 고문, 아동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참전 용사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면서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된 이 질환은 최근에는 많은 경우에 적용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치료가 쉽지 않아 환자나 치료를 담당하는 입장에서 모두 난감한 일입니다.

미국에서는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에 참전한 많은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전쟁 중 경험한 많은 비인간적 행위에 대한 죄책감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빠져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잘 드러나지 않으나 최근 베트남전 참전 용사 중 많은 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을 받았으며 사회적 관심 부족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최근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아동 학대 역시 피해 아동들이 성장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촉발되어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어 사회적 관심이 필요합니다.

정리하자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아주 충격적인 경험을 통해 마음을 심하게 다쳐,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어려울 만큼 몸도 마음도 망가지는 것입니다. 그 경험은 대부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게 되는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은 주로 자책을 하면서 스스로를 학대하거나 유사한 환경에 처하게 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당한 상황처럼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극복은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과거를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하고 당당하게 세상에 나서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지난 주말 전국적으로 펼쳐진 촛불집회는 우리 국민들에 대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걱정을 조금은 거두게도 합니다. 지난 주말 촛불집회를 보면서, 우리 국민들의 위대함은 물론 지혜로움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리 국민은 참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그 엄청난 일 앞에서 우리 국민들은 현실을 회피하지 않은 것은 물론 파괴적 형태로 분노를 표출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이 현실은 우리 국민들에게 현실사회의 한계와 개인적 무력감을 주었지만, 도리어 이렇게 황당하고 또 지극히 부정적인 체험을 하면서도 가족이 함께하는 촛불집회와 문화제로 그간 외면했던 현실을 직시하고 적극적인 자기 의사 표출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가고 있습니다. 결국 이번 난국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유발하는 사건이 아니라, 촛불집회를 통해 도리어 우리 국민들에게 ‘외상 후 성장’의 기회로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1987년 6월항쟁의 끝에 얻은 6·29선언으로 시민들은 두꺼운 방석복을 벗어던진 경찰들과 얼싸안고 환희를 터뜨렸지만, 그 이후 사회는 여전히 우리 국민의 소망대로 흘러가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위정자들이 잘 마무리하여 그간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완치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이 어이없는 사회를 자녀들에게 다시 대물림하지 말고, 말끔히 청소하여 그간 쌓인 마음 속 응어리나 슬픔이 깨끗이 해소되는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다시 평상심을 회복하여 건전하게 사회에 복귀하길 기대합니다. 이번 촛불집회가 단순히 일찍 깬 몇 마리 새들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어두웠던 온 숲이 일어나는 새벽의 시작이라 믿습니다. 정말 단풍도 달도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