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공평과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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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28 07:51  |  수정 2016-11-28 07:51  |  발행일 2016-11-28 제15면
[행복한 교육]  공평과 책임
이금희 <대구공고 수석교사>

학생 두 명이 싸웠다. 먼저 큰 소리가 나고 어느 누구랄 것도 없이 몸이 스프링처럼 튀어오르고, 욕설과 함께 책상이 뒤로 밀쳐졌다. 수업 중이었다. 교사가 깜짝 놀라 먼저 시비를 건 아이를 몸으로 제지하며 손목을 그러쥐었다. 아이가 두 손으로 의자를 집어 올리려 했기 때문이다.(이 학생을 가군이라 하자.) 다행히 더 이상의 몸싸움은 없었지만 흥분한 두 학생은 교사의 만류에도 쉽게 진정되지 않았고, 결국 두 학생은 각각 다른 장소에 격리되었다.

짐작하겠지만 위의 교사는 바로 나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싸운다는 것은 교사의 수치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을 가감 없이 들여다보려 한다. 내가 봤을 때 이 싸움의 일차 원인은 가군이다. 가군이 다른 친구의 말을 자신에 대한 험담으로 오해하여 큰 소리로 화를 내고 아주 심한 패드립(패륜적 드립이란 말로 부모나 조상을 비하하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욕 중에서도 가장 심한 것이 패드립인데, 이 욕은 멀쩡하던 아이들도 확 돌게 하는 무서운 기운을 가지고 있다. 가군은 분노조절 장애라는 병을 앓고 있고, 이전에도 이런 상황이 몇 번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수업 시간마다 관찰을 하고 조심을 하였는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가군이 다른 장소로 간 뒤 남은 학생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좀 참아야지. 왜 너희까지 그러니?” 그러자 아이들이 이구동성 불만이다. “왜 선생님들은 우리에게만 자꾸 참으라고 하세요? 보셨잖아요. 누가 잘못했는지. 정말 우리도 피해자라고요.” 그 말은 옳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참으려고 애썼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는 가군의 행동에 지치기도 하고, 패드립까지 나오면 참기가 쉽지 않으리라 싶다. 따지고 보면 그애들도 참는 게 가장 어려운 10대 아이들이다. “그래, 너희들이 참 고생이 많다. 하지만 그렇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너희도 위험하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야 사람 아니냐?”하고 달랬다. 그러나 아이들은 여전히 불만스러워했다.

누그러지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무엇이 공평이고 배려인지 고민스러웠다. 가군이 그렇게 된 것은 그런 성장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가 어느 날 자신의 행동이 범죄시되고 부당한 것이 되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놓일 때 그 아이 또한 얼마나 난감했을 것인가? 감정 표출하는 방법을 그렇게밖에 못 배웠는데, 자신도 조심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왈칵 화가 솟구칠 때는 조절할 힘이 없는데…. 가군은 그 일이 있고 나서 바로 나에게 사과를 하였다. 하지만 반 친구들에게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인지상정의 미덕이다. 하지만 그런 배려가 오히려 가군의 감정 조절 능력을 퇴화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같은 잘못을 하고도 환자라는 면죄부를 줌으로써 행동을 교정할 기회를 없애는 것이 아닐까. 마음의 병을 이해하는 것과는 별도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정확히 묻는 것이 오히려 병을 고치게 하는 처방이 아닐까. 누구라도 어느 한 쪽에게 일방적으로 참으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감정을 다스리고, 상대를 배려하고,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능력은 누구에게라도 꼭 필요한 생존 능력이니까. 그런데 과연 이런 결론은 바람직한 것일까? 나는 오래 창가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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