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아이나 어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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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26   |  발행일 2016-11-26 제23면   |  수정 2016-11-26
[토요단상] 아이나 어른이나

부모로부터 꾸중을 자주 듣는 아이가 있다. 꾸중 듣는 일을 저지르는 것에 숙달되어 있는 것이다. 꾸중을 들을 때는 괴로워하고 후회도 하지만 당시뿐이다. 곧 다시 꾸중 들을 일을 벌인다. 꾸중 듣는 일이 반복된다. 꾸중 듣기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꾸중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는 식으로 반문한다. 꾸중 듣기 싫어한다는 말이다. 싫어한다는 것은 말뿐이고 실제적으로는 꾸중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중심으로 볼 때 말과는 달리 꾸중을 좋아하는 셈이 된다. 꾸중을 좋아하는 모습이라고 일러 주면, 아이는 펄쩍 뛰면서 극구 부인한다. 자기는 절대 꾸중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아이에게 다시 묻는다. 꾸중 들을 일을 저지르기 전 꾸중을 들을 줄 알았는지 몰랐는지 물어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꾸중 들을 줄 알았다고 한다. 꾸중 들을 줄 알면서도 일을 저지른다는 것은 말과는 달리 꾸중이 듣고 싶고 꾸중 들을 어떤 심리적 필요가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꾸중을 들음으로써 부정적인 자극이지만 익숙한 자극의 공급을 받는다. 얼른 이해하긴 어려우나 결국 만족을 얻는 것이다. 맥주를 처음 맛보았을 때 씁쓸한 맛이지만 계속 마셔 입에 익숙하게 되면 나중에는 쓴맛이 개운한 만족을 느끼게 하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다.

남편도 아내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한다. 같은 내용의 잔소리다. 돈, 술, 담배, 귀가시간, 가사와 육아 도움 등 잔소리거리는 수없이 많다. 남편들에게도 “아내의 잔소리 듣기를 좋아하는군요”라고 말하면 얼른 납득하지 못한다. 술에 취해 새벽 일찍 귀가하는 남편에게 “그렇게 하면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게 될 줄 미리 알았는가”라고 물으면 “당연히 알았다”고 답한다. 남편들은 아내의 잔소리가 듣고 싶고 또 꼭 필요했나 보다. 아이나 어른이나 꼭 같다.

아주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제대로 된 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서 자란 아이는 엄마와 애착관계가 불충분해 엄마와의 관계부터 순조롭지 못하다. 이런 아이는 놀이방에서 엄마와 같이 놀고 있다가 엄마가 자리를 뜨면 엄마가 안 보이는 상황을 매우 힘들어하며 보챈다. 계속 엄마를 찾으며 엄마가 사라진 출입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다른 아이들이나 친절하고 낯익은 놀이방 선생님이 있어도 엄마 없이는 혼자 지낼 수가 없어 애타게 엄마를 찾는다.

그렇게 애타게 찾던 엄마가 돌아오면, 엄마를 힐끗 쳐다보고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애타게 찾았으면 한번 안겨보기라도 하건만 오히려 엄마의 접근과 놀이 간섭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엄마는 있기만 하면 된다는 투다. 엄마와 재미있고 의미있게 지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애타게 찾던 엄마와의 관계가 평소대로 있으면 됐고 내용은 별거 없다.

남편이 새벽이 될 때까지 귀가하지 않을 때 아내는 이제나저제나 남편을 기다린다. 출입문 쪽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운다. 막상 남편이 들어오면 남편과 좋은 관계를 맺어왔던 아내는 얼른 현관으로 나가 남편을 온몸과 마음으로 맞이한다. 반가움과 야속함, 다행스러움과 안심함으로. 그러나 남편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아내는 힐끗 쳐다보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왔으니 됐다. 밉기도 했기에 뭐 챙겨주고 맞아줄 필요가 있겠는가. 애타게 기다리던 모습과는 달리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이유와 논리는 어떻든지 간에 기다렸던 남편과의 해후에 별반 좋은 내용이 없다.

결국 평소 좋지 않은 관계 양상이 그대로 반영되는 모습이다. 불충분한 애착을 보였던 아이의 모양새와 꼭 같다. 아마도 아내는 불완전 애착을 보이는 아이였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와 같은 내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아이나 어른이나.

어른이라고 다 어른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니다. 겉은 어른인데 하는 행동은 아이와 다를 바 없는 경우도 많다. 마치 어린 아이가 커다란 어른 속에서 산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행동 속에 불쌍한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런 아이를 키우는 재양육 치료의 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김영호 <사>한국가족상담협회 대구가족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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