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그날, ‘설리’가 없었던 불운을 어쩌겠나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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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24   |  발행일 2016-11-24 제31면   |  수정 2016-11-24
[영남타워] 그날, ‘설리’가 없었던 불운을 어쩌겠나

2009년 1월15일.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내리던 눈은 아침 일찍 그쳤다. 승객 155명을 태운 US항공 1549편은 오후 3시30분 공항을 출발해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롯으로 향했다. 비행기가 새 떼와 충돌한 것은 이륙한 지 채 2분이 되지 않아서였다. 하필이면 새들이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양쪽 엔진 모두에 불이 붙었고, 비행기는 곧바로 멈춰 버렸다.

최악의 상황을 맞은 기장 설리는 허드슨강에 비상 착륙을 시도한다. 1천200명의 구조대원과 7척의 배는 영하 20℃의 한겨울 칼바람 속에서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155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모두 무사히 구출했다. 기적을 이루는 데 걸린 시간은 24분. ‘허드슨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 사건을 소재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설리’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지난 주말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세월호 7시간- 대통령의 시크릿’을 본 뒤, 지나간 이 영화가 갑자기 떠올라 찬찬히 돌려봤다. 한 대의 비행기를 책임진 기장의 모습 위로 한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5천만명의 국민을 이끄는 이 나라 대통령의 리더십과 책임감은 155명의 승객을 책임진 비행기 기장보다 과연 나은가.

영웅이라 칭송받던 설리는 155명의 목숨을 살리고도 청문회에 소환되어 허드슨강에 비행기를 착륙한 것이 최선이었는지 증명하고 확인시켜야 했다. 매일 밤 악몽을 꿀 정도로 끊임없는 고민과 번뇌에도 시달렸다. ‘만약 잘못되었다면?’ 비행기에 탑승한 155명의 목숨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악몽은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다.

101분 동안 세월호는 서서히 침몰했고, 208초 사이 US 1549는 강으로 떨어졌다. 한 사건은 참사가, 다른 한 사건은 기적이 되었다. 영화는 감독의 의도대로 9·11 테러 트라우마와 2008년 금융 위기로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던 미국민들에겐 감동과 희망을 안겨주었을지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겐 설리가 없었다. 대신 승객을 내팽개친 채 먼저 탈출한 선장과 승무원들이 있었다. 긴박한 순간 해경의 구조는 부실했고, 관료들은 무능했다. 매뉴얼은 없었고, 상식은 지켜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7시간 동안 컨트롤 타워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다 했는지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받았는지 국민들은 묻고 또 물었으나, 여전히 비밀로 남아있다. 그 비밀스러운 시간 위로 피부미용, 불법시술 등 입에 올리기에도 민망한 내용들이 차곡차곡 퍼즐처럼 맞춰지고 있다. 그런 대통령이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불안과 공포만 커진 시간이었다.

설리는 물이 차오르는 비행기를 두 번씩이나 둘러보며 ‘아직 누구 있습니까’를 수없이 외친 뒤 마지막으로 빠져나왔다. 구조된 뒤 ‘괜찮냐’는 첫 질문에는 ‘155명이 전부 확인되면 대답해 주겠다’고 했다. 그에게 ‘155’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사람으로 ‘155’를 읽기 시작하면 그 아내와 딸, 아들, 어머니, 아버지, 형제, 친구가 보인다. 그러므로 155명이 죽는다는 것은 155명이 죽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155번 일어나는 것이다.

공청회에 선 설리는 기적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동료 승무원, 페리호 선장과 직원들, 경찰 구조대, 시민 모두가 기적을 만들어낸 주인공들이라고 했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했을 뿐이며, 자신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설리 같은 사람이 없을 리 없다. 쓸어내도 다시 쌓이는 낙엽을 묵묵히 치워내는 환경미화원에서부터 매연 속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관들, 눈 쌓인 철조망을 지키는 병사들, ‘가만 있으라’ 해서 침몰하는 배에서 자리를 지킨 단원고 학생들, 희망을 찾기 위해 촛불을 든 광장의 저 사람들까지. 그날 대한민국의 컨트롤 타워에는 설리가 없었다. 지나간 일을 어쩌겠나. 이제라도 우리의 불운은 스스로 극복하는 수밖에. 이은경 주말섹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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