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난세의 진정한 영웅은…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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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22   |  발행일 2016-11-22 제30면   |  수정 2016-11-22
20161122

탄핵대상 된 첫 여성대통령
유불리만을 셈하는 정치권
국가적인 위기 부를까 우려
난세일수록 기본 충실하고
개인이익 연연하지 말아야


고백건대 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1998년에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출마해 정치인으로 입문했을 때 참 다행이다 싶었다. 당선 여부를 떠나 대통령의 딸이었던 여인이 습한 음지에서 벗어나 환한 양지의 세계로 나온 듯해 반가움이 있었다. 현대사의 거목, ‘박정희’의 딸이 육영재단 분쟁 등 별로 좋지 않은 일로 이런저런 여성잡지를 장식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가져왔던 터였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의 탄생을 우리 역사의 진일보로 봤기 때문이다. 권력지수 등 양성평등 문제에 있어서만은 한국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나라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박근혜’의 성공 여부의 파장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정도를 넘어 ‘탄핵’ 대상으로 거론되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국정 최우선 과제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쳤으나, 스스로의 비정상적 시스템 작동에는 왜 눈을 감았을까. 자신이 편안한 대로 사람을 쓰고, 스스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신이 믿는 사람만 옳다고 하는 편협함이 ‘의리’를 지키는 것으로 둔갑한 탓이다. 애당초 우려한 대로 박 대통령의 ‘실패’는 곧바로 여성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분간은 기관단체장, 민간기업 임원 등에 여성이 가기 한층 힘들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금 이 시간에도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여성들에게는 힘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우선 나라 걱정부터 앞선다.

세계 11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국정이 사실상 공백 상태에 빠져 신음하고 있다. ‘트럼프 변수’로 한반도 정세와 무역 환경이 우리나라에 불리한 쪽으로 급변할 조짐을 보이고,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세계적 경기 침체의 그늘이 가시화하는 총체적 난국에 직면한 상황에서 닥친 행정부의 ‘실종’은 커다란 국가적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게 한다.

이같은 비상 상황이지만, 행정부를 대신해 국정을 이끌어야 할 국회와 정치권은 정치 공방만 주고받고 있다. 오로지 차기 대선을 두고 유불리 계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여당은 주류, 비주류로 나뉘어 ‘밥그릇’ 싸움에 골몰하고,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두 야당은 각각 정국 수습의 주체가 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이랬다저랬다 갈팡질팡이다. 국정표류를 종식시킬 지혜를 모아내기는커녕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정치권을 향한 민심은 악화일로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건만, 차기 대선이 목전이건만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한탄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은 몇몇 권력자가 아니었다. 헌신하는 공직자, 무너진 시스템 속에서도 일자리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 애쓰는 기업인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영웅이다. 그런 측면에서 필자는 권력 말기, 그것도 의혹에 휩싸여 ‘무너져 가는 청와대’로 기꺼이 걸어들어간 최재경 민정수석을 주목한다. 그는 검사 재직 시절 당대 최고의 ‘칼잡이’로 불렸고 인품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새누리당으로부터 당선이 유력한 대구 지역구 출마를 강하게 요구받았지만 끝끝내 거절했다. 그래서 그의 청와대 입성을 안타까워한 사람이 많았다. 다음 정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너무 어려울 때”라며 두말없이 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앞으로 나라를 위해 그가 어떤 일을 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역시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이 중요하고, 사람이 희망이다. 개인의 유불리에 연연해하지 않은 최재경 민정수석의 공직자 자세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이영란 서울취재본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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