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주 서면 도리마을

  • 류혜숙 객원
  • |
  • 입력 2016-11-18   |  발행일 2016-11-18 제36면   |  수정 2016-11-18
은행나무 1만 그루…하늘도 땅도 온통 ‘샛노랑’
20161118
집 앞이나 길 가에 주민들이 기른 여러 작물들을 내 놓았다.
20161118
중마을에 위치한 관인정(冠印亭)과 ‘효부 유인 단양우씨 효천 행적비’.
20161118
도리에서 시작된 심곡천이 심곡지를 이룬다. 도리못이라고도 부른다.
20161118
도리마을의 은행나무 숲은 밭과 함께여서 더욱 아름답다.
20161118
도리마을 초입. 은행나무 숲이 가로수처럼 늘어서 있다. 도리에는 이러한 숲이 여럿이다.

경주의 서쪽이라는 서면. 영천과 등을 맞댄 골짜기에 도리 마을이 있다. 골짜기지만 대부분이 평지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의 서쪽에는 심곡천이 흐르고, 그 주변에는 비옥한 땅이 펼쳐져 있다. 마을에서 시작된 심곡천은 마을 초입에 커다란 심곡지(深谷池)를 이루고 대천이 되었다가 형산강으로 합류한다. 심곡천이 심곡지가 되는 물결 앞에서 도리를 바라본다. 황금 왕관을 쓴 것 같은 은행나무 숲들에 눈부시다.

마을 곳곳 15m 높이 은행나무 숲 빼곡
바닥 소복한 은행잎 발소리마저 흡수

50년 前 가로수로 팔기 위해 심어졌다
한동안 악취·농사피해로 갈등 빚기도


◆ 도리마을 은행나무 숲

도리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좁은 은행나무 숲이 방풍림처럼, 가로수처럼 죽 늘어서 있다. 삼각대를 앞세운 한 사람이 ‘한 순간’을 기다리며 보초병처럼 서 있다. 할머니는 길가에 두꺼운 비닐을 깔고 한 덩이, 두 덩이 배추를 쌓기 시작하신다. 젊고 잘생긴 남자가 봉으로 길을 가리키며 주차 안내를 하고 있다. 마을 주민이란다. 안내를 따라 좁은 고샅길을 통과하자 은행나무 숲 뒤편에 마련되어 있는 넓은 주차장에 닿는다. 지난 계절 동안 수고로운 밭이었던 땅은 가을 한 계절 동안 차들의 밭이 된다.

은행나무 숲은 논과 배추밭, 고추밭, 사과밭 위로 높이높이 솟아 있다. 숲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로 무리지어 마을 곳곳에 우뚝하다. 도리의 은행나무는 1만 그루쯤 된다고 한다. 은행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50여 년 전이다. 임협 시험장에서 근무하던 마을의 한 사람이 가로수로 팔기 위해 은행나무 묘목을 심었고, 그것이 반백년 세월 동안 자라 높이가 15m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지금은 그의 아들이 숲의 주인이다.

집 앞 평상에 농산물들이 놓여 있다. 은행 몇 봉지, 땅콩 몇 봉지, 감, 고구마, 대추, 생강. 파란 이파리를 단 예쁜 당근도 보인다. 가을날 정오의 시간은 조용하다. 몇 무리의 방문객이 숲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는데도 정작 숲에서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깊지도, 지나치게 울창하지도 않은 숲이라 건너의 집과 밭과 사물이 나무의 허리사이로 보이는데,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이 숲에 스며들었다. 아주 가끔 사과를 따는 똑 소리와 손수레가 굴러가는 끼익 소리와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내려앉는 가벼운 바삭거림만이 들린다.

은행나무 숲으로 들어가면 나도 사라지게 되는 걸까. 비옥한 흙 위에 떨어진 잎 위로 발걸음을 놓자, 땅은 발소리마저 양분을 흡수하듯 빨아들인다. 바닥에는 노란 잎과 함께 아직 초록의 엽록소를 지닌 잎도 많다. 아직 푸른 기운이 많은 숲. 태양과 얼굴을 마주하는 우듬지만이 완연한 황금색이다. 어제의 바람 때문일지도 모른다. 올해의 도리 은행나무 숲은 지난해보다 단풍이 늦다. 완전히 황금빛으로 물들기 전에, 그만 이대로 끝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든다.

◆도의(道義)를 소중히 여겨 ‘도리’

도리는 신라건국 이전인 2천여 년 전부터 이미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천 북안과 경계를 이루는 고깔산과 구미산 자락인 이내산이 감싸는 아늑한 골짜기다. 옛날부터 주민들은 향회(鄕會)를 열어 모든 일을 서로 의논하며 도의(道義)를 지키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도의(道義), 도실, 도질(道叱), 도동(道洞)으로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도리(道里)’가 되었다.

은행나무 숲은 대부분 도리 1리에 형성되어 있다. 도리 1리는 심곡지가 끝나는 곳에서부터 골짜기를 따라 3개의 부락으로 이루어진다. 첫 부락은 도리1리 마을회관이 있는 곳으로 오밭골 혹은 오전동(五田洞)이라 한다. 산골마을이지만 그나마 밭이 많은 넓은 지역이라는 뜻이다. 도리1리 경로당과 버스 종점이 있는 곳은 중마을 혹은 중리(中里)다. 경주김씨 집성촌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 김지련(金之鍊)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관인정(冠印亭)과 ‘효부 유인 단양우씨 효천 행적비’가 자리한다. 우씨 부인의 시아버지는 어느날 그녀를 불러 치마폭에 ‘효성스럽다, 나의 며느리!(孝哉吾婦)’라 쓰고는 숨을 거두었다 한다.

중마을에서 골짜기를 따라 더 들어가면 웃마을 혹은 상리(上里)다. 이 마을 어귀에 경주시 보호나무로 지정되어있는 수령 300년 이상의 느티나무가 있다고 하는데 그곳까지는 가지 못했다. 마을 초입에서 웃마을까지는 약 1㎞라 한다. 관인정 앞에서 지나온 길의 은행나무숲을 본다. 추수를 끝낸 들판 너머로 몽글몽글 무리지은 숲들. 아름답다.

◆애물단지 혹은 보물단지

그림 같은 아름다움이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은행나무 숲은 오랫동안 애물단지였다 한다. 처음 나무를 심고 가꾸었던 이가 나이가 들면서 숲은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고, 방치된 숲은 마을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기 시작했다. 높이 자란 숲 그늘에 작물은 열매를 맺지 못했고, 길게 뻗어나간 뿌리는 땅의 기운을 앗아갔다. 은행나무 열매는 가을마다 악취를 풍겼고 빽빽한 숲은 겨울 동안 멧돼지와 고라니 등을 불러 모았다.

마을은 은행나무 숲에 갇혀 버렸다. 조금씩 숲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좁은 마을길은 무질서한 주차장이 되어버렸고 하루 여섯 번 들고나는 버스가 달리기 어려워졌다. 결국 참다 못한 주민들과 숲 주인 간의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숲 주인은 이 은행나무 숲이 마을을 더 발전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은행나무 열매의 퀴퀴한 냄새는 전혀 맡을 수 없다. 군데군데 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도 보인다. 주민들은 곱게 키운 농작물을 길가에 내어 놓는다. 농작물들 속에 함께 자리한 은행이 반갑다. 그 작은 봉지는 마치 갈등의 해소처럼 보인다. 은행나무는 할아버지가 심으면 손주가 덕을 본다 하여 ‘공손수’라고 불리기도 한다. 은행나무 숲이 마을의 보물단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경주역-도리’라 창에 붙인 버스가 지나간다. 운전기사님이 활짝 웃어 주신다. 무엇이든 외견대로 고수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영천IC에 내린다. 4번 국도를 타고 경주방향으로 가다 서면에서 빠져나가 아화 읍내에 닿기 직전 심곡지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간다. 경부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통과해 계속 직진하면 심곡지 지나 도리다. 건천 IC에 내려 영천방향으로 가다 아화에서 심곡 지나 도리로 갈 수도 있다. 단풍철 동안 임시 주차장이 마련되며 간이 화장실도 있다. 휴일에는 소소한 먹거리를 팔기도 한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