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역사 바로 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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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15   |  발행일 2016-11-15 제31면   |  수정 2016-11-15
[CEO 칼럼] 역사 바로 세우기
박봉규 (건국대 석좌교수·전 대성에너지 사장)

조선을 건국하자마자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역사를 편찬하는 일에 매달렸다. 명목은 앞선 나라의 흥망성쇠를 되돌아보아 후대 왕들에게 경계로 삼기 위함이다. 그러나 내심은 고려에 대한 비판을 통해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3년여의 작업 끝에 ‘고려사’가 완성된다. 태조는 매우 만족해하면서 책임 집필자였던 정총, 정도전에게 큰 상을 내렸다.

그러나 ‘고려사’는 이방원이 즉위하면서 전혀 다른 운명을 맞게 된다. ‘고려사’의 내용 중 조선왕조 개창과 관련된 부분이 정도전이 주장하였던 재상중심주의의 영향을 받아 지나치게 개국공신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고려사’는 편찬 과정에서 고려 말까지의 역사는 이미 나와 있는 역사책 등을 기초사료로 사용하였으나 조선왕조 개창과 관련된 부분은 기존에 정리된 일이 없으므로 독자적인 시각에서 서술될 수밖에 없었다. 태종은 “내가 고려사의 뒷부분을 보니 태조임금에 대한 내용이 자못 사실과 달랐다”고 주장하면서 왕족 중심으로 다시 기술할 것을 지시하였다. ‘고려사’에 대한 수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차 개정된 고려사는 세종임금에 의해 다시 2차례나 더 수정된 끝에 완성을 보게 된다.

실록도 같은 운명을 겪었다. 반정으로 전임 임금을 몰아내고 집권한 경우나 당쟁을 통해 상대편의 희생을 딛고 정권을 잡은 세력들은 예외없이 수정실록이라는 이름으로 승리자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다시 편찬하였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현대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역사서술은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1차적으로 과거 어느 시점에서 일어난 객관적 진실을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과거는 사료들을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지만 과거의 모든 사실이 동일한 조건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정치적 사안의 경우 후세에 남겨지는 기록은 오롯이 승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들이다. 사관은 기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남길 것은 남기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사실을 축소하거나 확대하기도 한다. 비록 의식적인 왜곡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의 눈에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이게 마련이다. 패자의 항변은 불태워지거나 땅에 묻히게 된다. 실록의 기록이라고 하여 정치적 오염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그것만이 아니다. 역사기술이란 현재의 역사가가 과거를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치므로 필연적으로 역사를 보는 관점이나 이념에 따라 같은 과거의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 해석이 크게 다를 수 있다.

이제 곧 국정교과서의 내용이 공개된다고 한다. 또다시 이념을 바탕으로 한 공방이 한바탕 전개될 전망이다. 국정을 주장하는 측은 역사교과서는 국영수와는 차원이 다른 분야임을 강조한다. 국정화를 통해 통일된 역사관을 심어줌으로써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다고 한다. 검정체제를 유지하는 한 좌편향되어 있는 현재 교과서들의 수정이 어렵다고 한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점들이 한둘이 아니다. 옳고 그름이나 통일된 역사관에 대한 판단은 누가 하는 것인지, 획일적 사고가 가져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부작용은 어이할 것인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개인의 선택권은 어디로 가는지, 창조경제가 꽃이 피고 노벨상이 나오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 사고의 다양성을 키워주어야 한다는 주장과는 모순되지 않는지. 왜 우리보다 앞서가는 선진국들은 모두 국정교과서를 채택하지 않는지 따위에 대해 답을 내놓아야 한다.

모두가 인정하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역사는 없다. 과학과는 달리 관점에 따른 다름이 논쟁을 통해 쌓여가면서 역사가 되는 것이다. 수정실록이 만들어진 것처럼 시간이 흐르고 해석을 달리한 수정 국정교과서가 나온다면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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