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왜 부끄러움은 항상 국민의 몫인가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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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15   |  발행일 2016-11-15 제30면   |  수정 2016-11-15
20161115

있어선 안 될 역대급 게이트
지켜보는 국민들은 피눈물
정의가 살아 있는지 여부는
칼자루 잡은 검찰 손에 달려
추상같은 단죄로 부응해야

“에이, 설마…. 진짜가?”

모두가 처음엔 눈과 귀를 의심했다. 권력에 빌붙어 추잡한 짓거리를 일삼는 무리를 한두번 봐온 것이 아니었기에 그저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억장이 무너지는, 상상 이상의 기가 찬 현실에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어디서 뭐가 더 튀어나와 분노게이지를 끌어올릴지 이젠 두렵기까지 하다. 2016년 병신년 가을은 그렇게 가슴 한 켠에 자리한 통증만 커져가고 있다.

정말 이해가 안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펼쳐져서는 안 될 ‘헬’이었다. 명색이 지구상에서 좀 나간다는 국가들이 포진해 있는 OECD와 G20 멤버이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는 나라에서 도대체 이게 뭔가.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곯을대로 곯았는데, 국민 대다수가 각자의 위치에서 대한민국 국격과 품격을 떠받들고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쳐온 게 서럽기만 하다. 결국 죽 쒀서 개 준 꼴인가.

한편으로는 그 여자의 능력이 놀랍다. ‘내가 로또에 당첨되면 뭘할까’라는 행복한 고민의 가짓수보다 훨씬 더 많은 분야에서 탐욕을 보여줬다. 그동안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웠을까. 과연 안되는 게 있었을까. 경악하게 만든 실체가 좀 더 늦게 발각됐더라면 그 마수가 어디까지 뻗쳤을지 모골이 송연하다.

소위 ‘비선실세’라는 것들을 호위, 또는 비호하며 완장값을 무한대로 끌어올린 떨거지들은 반드시 단죄돼야 한다. 대통령비서실 주요 보직을 담당했거나 여당 실세였던 아저씨들은 그들의 존재를 하나같이 몰랐단다. 일부는 알긴 했지만 그런 행위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우기고 있다. 자기방어용 법률용어인가? 몰랐다고 잡아떼면 스스로 양심없는 버러지같은 인간임을 만천하에 고한 것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진정 몰랐다면 공직자로서의 인지 및 상황파악 능력이 똑똑한 개·돼지 수준에 다름 아닐 것이다.

지금 국민을 더 열받게 하고 의아하게 만드는 상황이 또 있다. 장삼이사 입장에서 보면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며 청소년까지 촛불을 들게 만든 이 ‘호러드라마’의 주·조연급은 당연히 범죄자다. 그래서 그에 상응하는 벌을 마땅히 받아야 정의로울 것이다. 그것도 꽤나 무겁게.

그런데 참 희한하다. 국민을 부끄럽고 창피하고 쪽팔리게 만든 국정농단의 주범과 공범을 처벌하기에 앞서 치열한 법적다툼이 예상된단다. 법치주의국가에서 당연한 다툼이지만 이 순간, 범부필부의 정서로는 초법적인 단죄를 요구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남녀노소와 지역을 불문하고 100만개의 촛불을 밝히게 만든 이 역대급 게이트가 열리기 전만 하더라도 근대 형벌제도를 지배해온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는 상당히 합리적이고 옳아보였다. 법률가들이 볼 땐 단순·무식·과격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너무 분하고 엄정한 이번 사태에 걸맞은 책임을 반드시 묻자는 게 민심일 것이다.

원칙적으로 국가기관인 검사만이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비아냥거림을 숱하게 들었던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마주하고 있다. 처지가 완전히 뒤바뀌었지만, 수사대상에는 전직 대통령을 향해 “당신은 대통령 아닌 뇌물수수 혐의자일 뿐”이라고 일갈했던 청와대 수석도 포함돼 있다. 진실을 파헤치고 정의를 세우는 일 앞에 국민이 박수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한가지 더. 박근혜정부는 영국의 경영전략가인 존 호킨스가 2001년 펴낸 책 ‘The Creative Economy’에서 처음 사용한 ‘창조경제’란 단어를 많이 사랑했다. 존 호킨스는 ‘새로운 아이디어, 즉 창의력으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유통업·엔터테인먼트산업 등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정권 초기부터 논란이 분분했던 단어의 의미는 역시나 아직까지 애매모호하다. 다만,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힘들고 어려운 세상이 ‘창조’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많은 국민에게 좌절감과 부끄러움을 안겨준 병신년(丙申年)이 빨리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준영 편집국 부국장 겸 사회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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