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박 대통령, ‘관저 정치가 낳은 참극’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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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14   |  발행일 2016-11-14 제30면   |  수정 2016-11-14
20161114

대통령 퇴근후 관저 가면
일반 참모들의 접근 봉쇄
그 공간을 장악한 최순실
3인방을 수족처럼 부리며
국정 농단하고 잇속 챙겨


“청와대 뒷산에서 촛불행렬을 보며 제 자신을 자책했다.” 2008년 6월19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미국산 소고기 파동으로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열렸을 때다. 청와대 뒷산인 인왕산 중턱에선 광화문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통령이 한밤중에 산에 올라 성난 민심의 외침과 물결치는 촛불을 바라보며 뼈저리게 반성하고 수습책을 고심했다는 얘기다.

그제 광화문에 100만 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 최순실의 농단에 놀아난 박근혜 대통령 ‘하야(下野)’를 요구하는 함성이 청와대를 뒤덮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官邸)에서 상황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관저는 대통령의 생활공간이다. 본관의 집무실에서 퇴근한 후 머무는 집이다. 관저에도 대통령 집무실은 있다. 하지만 촛불집회 참석자들이 청와대로 진입을 시도하며 차벽을 친 경찰병력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관저에 머물렀다는 건 좀 한가로워 보인다.

그 시간에 한광옥 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비서관급 참모들이 청와대에 비상대기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본관 집무실에 참모들을 모아놓고 TV로 생중계되는 광화문 현장을 지켜보면서 민심을 읽는 노력을 했어야 마땅하다. 가뜩이나 박 대통령의 ‘관저’에 대해선 인식이 좋지 않다. 박 대통령이 오후 6시에 퇴근해서 관저로 올라가 머리를 풀면(편한 복장으로 갈아 입으면) 참모들의 접근이 완전히 차단된다는 말이 많았다. 박 대통령이 1998년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18년 동안 동고동락한 ‘문고리 실세 3인방’(정호성·이재만·안봉근) 정도가 예외였다고 한다. 대통령 퇴근 이후 생기는 틈새를 최순실이 장악했다. 같이 사는 가족이 없는 대통령의 ‘말 벗’이 되어주면서 자신의 잇속을 챙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던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필자에게 얼마 전 들려준 말은 곱씹어 볼 만하다.

“대통령은 밤 10시부터 자정까지가 문제다. 대통령은 저녁 만찬을 6시나 6시30분쯤 시작해서 1시간30분 정도 하고, 관저에 도착하면 8시가 된다. 8시, 9시 뉴스 보고 적막강산에 두 내외만 남는다. YS(김영삼 전 대통령) 때 아들 현철씨는 그 시간에 손주들 데려가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다. DJ는 그 시간에 가판 신문 읽고, 보고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터넷 댓글 달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럼 박근혜 대통령은 그 시간에 뭘 할까? 아무래도 ‘문고리 권력’이 접근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야 밤 12시에도 DJ 관저에 들어가 잠옷 차림의 대통령과 얘기도 하고 했지만, 여성 대통령은… 문고리 권력들이 동생같고, 자식같고 편하니까, 그런 특수성도 있었을 거다.”

‘정보통’ 박지원조차 그 때까지만 해도 ‘최순실’의 존재와 위세를 몰랐던 것 같다. 언론도 최순실의 전 남편 정윤회만 주목했지, 최순실은 열외였다. 그 사이에 최순실은 관저를 드나들면서 대통령의 퇴근 이후 시간을 주물렀다. 그로부터 생긴 깊게 곪은 상처는 백약이 무효가 됐다. 박 대통령은 퇴진을 하든, 헌정을 이어가든 관저에서 내려와 민심과 대화한 뒤 마지막 결단을 내려야 한다. 지금 ‘세월호 7시간’의 행적이 벼랑 끝에 서 있는 대통령을 밀어 버릴 수도 있는 공포로 다가온다. 박 대통령은 한 번도 직접 해명한 적이 없다. “굿을 하지 않았다”는 말뿐이었다. 그 통에 온갖 괴소문들이 저잣거리에 떠돈다. 관저에서라도 집무를 봤는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 이제는 말해야 한다. 늦어도 많이 늦었지만 모든 걸 털어놓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한 뒤에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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