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대한민국은 눈물을 믿지 않는다

  • 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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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10   |  발행일 2016-11-10 제31면   |  수정 2016-11-10
[영남타워] 대한민국은 눈물을 믿지 않는다

고(故) 이규태 조선일보 논설고문이 자신의 기명칼럼을 통해 쓴 글 중에 ‘눈물문화국’(2000년 8월17일)이라는 게 있다. 그는 칼럼에서 우리 조상들처럼 눈물 묘사를 다양하게 쓴 나라는 이 세상 어디도 없을 성싶다며 조상들이 읊은 한시(漢詩)에 등장하는 각종 눈물을 소개하고 있다. 뚝뚝 떨어지게 흐르면 ‘누(淚)’, 소리 없이 주루룩 흐르면 ‘체(涕)’, 흐르다 갈라져 내리면 ‘사(泗)’, 눈물이 방울져 흐르면 ‘환()’, 콧물을 동반하면 ‘이()’, 남 몰래 흘리면 ‘설(洩)’, 눈에 가득 괴어 흐르지 않는 눈물은 ‘누()’로 표현했다. 모양을 보고 구분한 듯하지만 그 속에는 감성이 배어 있다.

이규태는 또 비를 사람이 흘리는 눈물이 감천(感天)한 것으로 비유한 나라 또한 없다며 ‘태종우’(太宗雨)를 소개한다. 태종우는 음력 5월10일을 전후해 내리는 비를 일컫는 말로, 혹심한 가뭄 속에 임종한 조선 태종이 ‘나 죽은 날 반드시 비를 내리게 할 것이요, 비에 맺힌 나의 한에 겨운 눈물이다’라고 한 데서 비롯됐다. ‘삼복우’(三伏雨)는 대춧골인 충북 보은 청산의 처녀가 흘리는 눈물에서 유래됐다. 복 중에 비가 내리면 대추 흉년이 들어 시집 갈 혼수를 마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눈물은 음식에도 등장한다. 이규태는 옛 어머니들이 음식 간을 볼 때 눈물의 간, 곧 염도(鹽度)에 맞추었을 때 가장 맛이 난다고 했다. 그래서 ‘눈물 서 말 흘리지 않고는 음식맛 못 낸다’는 속담이 진리라는 것이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 민요 ‘아리랑’처럼 문학과 음악 등 한국인의 정서 역시 눈물이 지배하고 있단다.

최근 대통령의 눈과 비선실세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장면이 잇따라 전국민에게 생중계되고 있다. 최순실씨와 함께 비선실세로 꼽히는 ‘문화계 황태자’ 차은택씨는 지난 8일 밤 인천공항 입국장 포토라인에 서서 ‘성실히 조사받겠습니다’라며 울먹였다. 게이트의 중심인물인 최순실씨는 지난달 31일 검찰에 출두하면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용서해 주십시오’라며 울먹였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일 두 번째 대국민 사과에서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으로 괴롭다’며 역시 눈물을 글썽였다. 경우는 다르지만 지난 3일에는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기자 간담회에서 눈물을 보였다. 이쯤 되니 ‘눈물문화국’이 아니라 ‘눈물공화국’인 듯하다.

박 대통령이 두 번째 대국민 사과 담화에서 검찰조사를 수용한다고 밝혔을 때 최씨가 펑펑 쏟은 눈물을 두고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쪽에서는 40년 넘게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 박 대통령이 고개 숙이자 감정이 동요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자신을 보호해 줄 것으로 믿었던 박 대통령이 최씨의 위법행위를 직접 거론한 것에 대한 반발 심리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최씨는 현재 혐의를 부인하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래서 출두 당시 용서해 달라던 최씨의 눈물에 대해 진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최측근’ 차씨에 대해서도 얼마나 진실을 말할지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흔히 거짓 눈물 또는 위선적인 행위를 ‘악어의 눈물’이라 한다. 이집트 나일강에 사는 악어가 사람을 잡아먹고 난 뒤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는 고대 서양전설에서 유래됐다. 실제로도 악어는 먹이를 먹을 때 눈물을 흘린다. 이는 눈물샘의 신경과 입을 움직이는 신경이 같아서 먹이를 삼킬 때 생기는 현상이다. 감정 없는 생리적인 눈물이다. 국민이 최씨와 차씨의 눈물을 ‘악어의 눈물’에 빗대고 있다. 박 대통령의 사죄를 놓고도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들이 많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줘야 할 위정자가 국민에게 도리어 눈물을 보이고 있다. 국민이 눈물 흘릴 때 대통령은 과연 어디에 있었던가. 민심이 천심이라 했다. 위정자가 ‘감천’시키려면 눈물이 아니라 행동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눈물을 믿지 않는다.

변종현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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