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겪은 일 진솔하게 표현하는 ‘생활글쓰기’의 중요성

  • 인터넷뉴스팀,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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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07 08:04  |  수정 2016-11-07 08:07  |  발행일 2016-11-07 제18면
일상에서 본 대로 들은 대로 글을 써보는 건 어떨까요
20161107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글은 재능이 아닌 마음으로 쓰는 것
타인의 경험을 읽으며 감동 느끼고
아이의 마음 키우게하는 좋은 방법


노랗게 물든 은행잎, 아침저녁으로 달라지는 기온을 느끼며 옷깃을 여미는 가을이다. 가을이 오면 국어교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아니면 가을을 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우리 학생들과 조금은 더 특별한 수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올 가을에는 아이들과 국어시간에 생활글쓰기를 해 보기로 했다. 마침 국어책에도 감동과 즐거움이 있는 글쓰기 단원이 있어서 이 단원과 연계해 아이들의 일상생활을 글로 써보는 활동 수업을 계획해 보았다.

생활글이란 자신이 겪은 일을 진솔하게 쓰고, 그것이 읽는 사람에게는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글을 말한다. 어른들은 이런 글을 수필이나 에세이라고 하지만,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인 아이들에게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아, 생활글이란 단어를 애용하고 있다.

이 가을, “얘들아, 어려운 거 아냐. 너희의 일상생활을 본 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쓴다고 생활글이야” 하면서 글쓰기로 초대했다. 아이들은 으레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는 둥, 글쓰기는 생각만 해도 질린다는 둥 별별 말을 다 내뱉지만 이 모든 혼란을 잠재울 비장의 무기가 내게 있다. 바로 이맘때 선배들이 쓴 생활글을 예시로 들려주는 것이다. 어른들이 아이인 척하며 쓴 글이 아니라, 지난 해에 딱 열네살이던 2학년 선배들이 쓴 글을 정말 한 시간 동안 공들여 읽어준다.

이게 ‘뭐, 재미있을까?’ 싶지만 정말 좋은 생활글은 아이들이 “또 읽어줘요” 하게 만드는 매력과 힘이 있다. 왜냐하면 마치 내가 그 글 속 주인공인 것처럼 실감나고, 때로 힘들고 창피한 일까지 당당하게 드러내는 자신감이 글 속에 묻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나와 주변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무언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생각이 글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시간, “예시글, 잘 들었지? 이런 글을 써 보려는 거야” 말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아이들은 무언가를 끄적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확인하는 말이 있다. “쌤이 본 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쓰라고 해서 그렇게 썼어요. 나중에 혼내기 없기예요” 한다. 이럴 때면 우리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 솔직하게 쓰라고 해서 솔직하게 썼다가 오히려 혼난 기억들이 상처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혼내기 없기” 약속의 의미로 아이들의 표현방식대로 엄지를 이마에 꾸욱 찍고 나면 연필 움직이는 소리만 교실에 가득해진다.

올해 가을에도 열네살, 1학년 아이들의 생활글은 찬란히 빛났다. ‘휴, 다행이다’ ‘지구인이 아닐지도 몰라’ ‘내 손목 돌리도’ ‘친엄마가 맞을까?’ ‘드디어 간다’ ‘동생이 날았다’ ‘손 떨리는 외국인의 부탁’ ‘날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글 따위’ 등 제목만으로도 읽고 싶은 호기심을 마구마구 일으키는 작품이 많았다. 이 중, 한 작품을 소개해 본다.

재목은 ‘그놈의 줄넘기’다.

‘최근 친구들이 줄넘기 대회를 나간다며 바쁘다. 친구들이 열심히 해줘서 좋지만, 하지만! 급식을 먹고 친구들이 줄넘기를 하러 나가면 급식 잔반 정리가 안 돼 있다. 나는 할 수 없이 잔반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선생님들께서 오시더니 “급식 당번이 아닌데 왜 도와주니?”라고 물으셨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이 줄넘기 연습을 하러 가서 제가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는데 선생님들께서 상점(賞點)을 준다고 하셨다. 나는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고, 무거운 급식통들을 갖다 놓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반복되면 힘들뿐, 3일 정도 급식통을 치우면서 힘들고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때 속마음은 “그놈의 줄넘기” 하고 울부짖는 것 같았다. 잔반통을 치우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당번들이 치우라고 해라, 계속 도와주면 안 된다”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줄넘기 하고 와서 피곤한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기뻤다. 이제는 가끔씩 들어줘야겠다. 그리고 이제는 마음이 “그놈의 줄넘기”가 아니라 “줄넘기 열심히 해!”로 바뀌고 있다.’

이런 글을 혼자만 보기가 너무 아까워 우리 1학년끼리 작은 전시회도 열기로 했다. 전시회라고는 하지만 A3 종이에 글을 프린트해서 예쁜 색깔의 우드락 종이에 붙인 것이 다지만 아이들은 정성을 다해 풀칠을 하고 붙였다. 완성된 생활글 종이판들이 이 가을의 낙엽처럼 알록달록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그놈의 줄넘기”에서 “줄넘기 열심히 해!”로 바뀌어 가는 마음이다.

이 가을, 생활글쓰기 수업을 통해 꼭 나누고 싶었던 것은 글은 재능이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마음이 본 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쓰는 글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을 자라게 하는 것 역시 인성교육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혜정<대구 경서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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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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