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지금 온 몸으로 민주주의를 배우는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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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07 07:47  |  수정 2016-11-07 07:47  |  발행일 2016-11-07 제15면
[행복한 교육] 지금 온 몸으로 민주주의를 배우는 청소년
임성무 <대구 화동초등 교사>

지금 우리는 과거 절대왕조 시절, 그것도 트라우마가 너무 크고 치유된 적이 없는, 미약하고 무능하고 포악한 왕이 다스리던 그 어느 시대를 떠올려야만 그나마 현재 나라꼴이 이해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70대 이상이 체험하고 기억하는 56년 전 대통령이 하야를 하고 하와이로 도망갔다는 4·19혁명을 떠올리며 ‘그때 그랬었구나’ 하고 짐작하고 있다.

시대정신이 민주화나 지속가능발전이 아니라 ‘샤머니즘으로부터 국가를 어떻게 구할까’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한국갤럽의 2015년 ‘한국인의 종교’ 보고서를 보면 종교를 믿는 사람의 비율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하지만 국민의 50%나 된다. 이 중 불교는 22%, 개신교는 21%, 천주교가 7%라고 한다. 기타 원불교, 천도교, 이슬람교, 유교 등 종교인의 비율은 0%로 분석될 만큼 그 수가 작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샤머니즘에 의지하며 국가를 운영해왔다는 것을 이해할 국민이 몇이나 될까.

교사인 나로서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이라는 부모와 정유라라는 학생이 학교나 공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우리가 모르는 권력과 부를 가진 이들이 겨우 이런 수준으로 학교를 농락했구나’ 싶기도 하다. 이것은 학벌이라는 게 얼마나 우상이 되었는지를 확인해주고 있다. 60대인 최순실은 학벌을 세탁하여 대학 강사에 유치원 원장까지 했고, 정유라는 초중등교육법에 나오는 수업일수의 3분의 2는커녕 겨우 50일도 다니지 않고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명문대학에 입학을 했고, 수업을 단 한 시간도 듣지 않았음에도 열심히 공부를 한 학생들보다 더 나은 학점을 받았다니 학교 꼴이 말이 아니다.

우리는 가끔 학교를 찾아가서 교사에게 행패를 부리는 부모와 교사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한 학생에 대한 뉴스를 들으면서 학교 교육의 위기를 말하고 개탄을 했다. 그런데 국가 최고 권력자의 뒷배를 이용하여 초중등교육법과 학칙을 농단하고 폭력과 부정을 저지른 최순실을 보았다. 이런 농단에 잔뜩 겁먹은 이 나라의 명문이라는 학교의 교사와 교수들을 생각하면 이 나라 교육 시스템이 이런 수준으로 허술했는지를 알게 되어 부끄럽고 화가 난다.

최근 시국집회에 유독 중·고등학생이 많이 나와서 발언을 한다고 한다. 우리의 현대사를 보면 3·1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대구 2·28학생운동, 4·19혁명까지 고등학생이 거리로 나왔을 때 이 나라 민주주의에 변화가 일어났다. 아마도 그건 배운 지식을 가장 순순하게 받아들인 청소년이 눈앞에 펼쳐지는 추잡한 현실을 어쩌면 가장 민감하고 정직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엉터리 나라꼴을 보고도 용기 있게 나서서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기성세대들을 보면서 실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국가의 최고 권력자와 이들과 한 통속이 되어 자신의 기득권만을 지켜왔던 정치와 부자들에 대해 분노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생인 딸은 너무 바빠서 지금 일어나는 현상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집에 오면 짬을 내어 설명을 요청한다.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이 주제로 수업을 하지 않았느냐고 하니 아무도 말하지 않는단다. 많은 중·고등학생들은 국가위기 사태임에도 교사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거나 심지어는 논쟁적 수업조차 하지 않고 침묵하는 교사들에게 실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나라의 부끄러운 꼴을 알게 되고, 왜 이런 꼴이 일어났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대통령의 퇴진이든 하야든, 과도정부든 거국중립내각이든 이 문제가 일단락 된 뒤의 교실 풍경을 생각해 본다.

학생들은 교사들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래서 지금 교사들은 침묵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의 자녀와 학생들은 거리에서 일어나는 민주주의의 과정에 참여하거나 지켜보면서 체험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그냥 어쩌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배울 것이다. 이렇게 온 몸으로 배우고 스스로의 참여로 이루어낸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를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이 부끄러운 나라꼴이 절망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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