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내 것 같은, 내 것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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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31 08:10  |  수정 2016-10-31 08:10  |  발행일 2016-10-31 제15면
[행복한 교육] 내 것 같은, 내 것 아닌
이금희 <대구공고 수석교사>

병원에 갔다. 사소한 감기였지만 내가 혼자서 해결 못하는 것을 의사는 해결해 준다. 입 한 번 벌리고, 귀에 체온기 한 번 집어넣고, 코에다가 약물 분사하고 “감기는 약 먹는다고 낫는 것이 아니니까, 푹 쉬고 영양을 취하세요”라며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절대 권력, 즉 처방전을 들고 나는 약을 타 왔다. 그 의사는 친절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권력을, 그 의사의 권력을 생각했다. 그가 불친절하게 나를 대하고 쿡 쑤시듯 코에 분사기를 쑤셔 넣어도 나는 대항할 힘이 없다. 그는 내가 갖지 못한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권력이 나누어 주는 약간의 베풂에 감사하는 것이다.

나는 그가 내가 갖지 못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고 소중하게 베푸는 것에 대해 고마워한다. 그러다가 내가 가진 권력을 생각해 보았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존재다. 어디 학생뿐인가? 학부모조차도 애송이 교사에게 꼼짝 못하는 것은 그가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대통령조차도 교사만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볼모로 교사와 파워 게임을 벌이겠는가? 그저 ‘제 자식이 부족하니 선생님의 지도편달을 바랄’ 뿐이다.

가능하면 나는 내 권력에 내가 속지 않고 살기를 바란다. 교사라는 권력은 나의 것이 아니라 다만 내가 잠시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자 했다. 학교에 찾아오는 학부모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들이 얼마나 웅크려 있고 조심스러워 하는지를 느낀다. 그래서 나는 교사가 아니라 같은 학부모 입장에 서길 좋아한다. 우리는 다 자식 땜에 속상하고, 내 힘으로 어찌 안 되는 어떤 것들 땜에 힘들어하고 있음을 공유한다. 그러다 헤어질 쯤에 우리는 친구 같은 동질감을 나누게 된다.

이러한 나의 태도가 학부모에게는 친절로 느껴질 수 있겠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반응이 아니라 나의 맘이다. 권력을 마구 휘두르다 보면 제일 먼저, 가장 많이 상하는 것이 나라는 것을 자주 느꼈기에 조심스러워진다. 친절한 의사도 단순히 고객유치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다가 내가 가진 권력이 얼마나 많은지도 생각했다. 엄마라는 권력, 여자라는 권력, 딸이라는 권력, 돈 번다는 권력, 두 다리로 멀쩡하게 잘 다닌다는 권력, 등산하면서 나무를 꺾을 수 있는 인간이라는 권력…. 하나하나 거론하다 보면 어쩌면 나는 대통령보다도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 내가 이렇게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살았구나. 마치 당연한 것처럼, 처음부터 내 것인 것처럼, 영원히 내 것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았구나. 온 몸을 부르르 떨며 놀란다.

권력은 힘이다. 권력은 그 자체로 상대를 위압한다. 그래서 작은 베풂조차도 권력의 상대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 그보다 권력을 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준다. 권력은 베풀수록 더 힘이 세어진다. 그것이 힘의 논리다. 지방에 자그맣게 웅크리고 사는 나도 아는 이런 힘의 논리를 잘 모르는, 우리 사회의 큰 권력들 때문에 온 국민이 독감같은 어지러움 속에 앓는다고 혼자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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