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길의 소박한 먹거리에 반하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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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28   |  발행일 2016-10-28 제33면   |  수정 2016-10-28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경남 의령
20161028
진주 촉석루 의암과 함께 2대 물속 바위로 유명한 남강의 솥바위, 이 솥바위 옆 의병공원의 망우당 동상이 의령을 ‘충재(忠財)의 고장’으로 호위하고 있다.

경남 의령(宜寧)에선 묘한 지기(地氣)가 감지된다. 이순신과 함께 임진왜란의 영웅인 망우당 곽재우,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벌어 ‘돈병철’로 불렸던 호암 이병철 등 세 걸물의 생가가 모두 의령에 포진해 있다.

어쩜 의령의 땅기운이 망우당·백산·호암을 낳은 게 아니라 이 세 사람을 만남으로 인해 오히려 의령의 지기가 더더욱 완정(完定)된 게 아닐까. 지기가 세상만사를 좌지우지하는 ‘풍수결정주의’, 그게 너무 득세를 하면 왠지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색하게 만들 것 같다.

아무튼, 이 세 사람의 기운을 품기 위해서 일부러 아침은 건너뛰고 물만 마시고 올해 들어 가장 강력한 안개에 휩싸인 남해고속도로를 달렸다. 군북IC로 나올 때까지 안개는 요지부동이었다. 의령의 초입은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하지만 의병교와 의병탑, 의병공원과 의병박물관에 옹골차게 서 있는 망우당 동상을 보자 ‘아, 비로소 의령’이란 느낌이 들었다.

의령 이야기의 허두를 음식으로 푸는 게 왠지 경망스러울 것 같았다. 이 고장의 식문화는 정신문화와 어떻게 결부돼 있을까. 임진왜란, 그 전장 속으로 향했다.

의령의 기본 정신은 ‘충(忠)’. 그게 단적으로 표출된 게 바로 ‘의병(義兵)’. 의병정신을 대변하는 인물이 바로 망우당이다. ‘의령에 오면 반드시 망우당의 얼이 봉안된 충익사부터 참배해야 된다’고 의령 사람들은 말한다. 충익사 바로 옆에 의병탑이 있다. 의병탑에서 정면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군청이 있다. 의병탑 글씨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다. 의병탑이 의령의 중심부에 뇌관처럼 박혀 있다. 의병탑 바로 옆에 2007년 개관한 의병박물관, 그 옆에 의병교가 있다. 다리 양측에 설치된 알록달록한 깃발이 서릿발처럼 나부낀다. 태극기급 기품이다.

의령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킨 날은 1592년 음력 4월22일. 그날의 함성을 기억하는 기운 생동하는 고목이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수령 600여년을 자랑하는 유곡면 세간리 ‘현고수(懸鼓樹)’다. 망우당이 의병을 일으킬 때 진군 고취용 큰북을 매달았던 나무다. 훗날 정부는 그날을 기리기 위해 매년 6월1일을 ‘의병의 날’로 제정했다.

2005년 의령 의병제전 때 명물이 하나 태어난다. 바로 ‘의령큰줄’이다. 줄다리기에 사용된 줄이 워낙 커 기네스북에까지 등재된다. 의령큰줄의 둘레는 4m, 사용된 볏짚만해도 1천400동, 무게는 54.5t.

의병박물관에서 칠순의 정기영 문화해설사를 만났다. 그가 의령발 의병문화의 의미를 소상하게 설명해준다.

1978년 학계에서 이순신과 곽재우의 입지를 비교분석한 적이 있다. 이순신은 관직을 받은 장수였지만 망우당은 관직없이 싸움터로 나갔다. 자연 그의 행적은 과소평가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은 23전23승, 망우당은 그보다 더 놀라운 전적을 올린다. 100여 차례 싸워 전승을 거둔다. 사실 남해를 지킨 이순신과 대구~진주라인을 사수한 망우당 때문에 왜군은 전라도를 한 치도 넘겨다볼 수 없었다. 망우당은 남명 조식의 외손서였고 34세 때 과거급제를 했지만 선조를 비방한 답안지 때문에 당시 급제자 모두 불경죄에 걸려 무더기로 낙방된다. 임란 때문에 칼을 잡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주겠다는 벼슬을 등지고 강호의 선비로 살다 갔다.

의령의 관문인 정암교를 건널 때, 나그네도 잠시 의병이 된다. 호암을 부자로 만들어줬다는 솥바위가 정암철교 바로 옆에 앉아 있다. 그 바위는 ‘밥바위’, 의령을 먹여살렸을까. 의병공원 망우당 동상 바로 옆에는 실제 가마솥을 본뜬 조형물이 있다. 저 솥이 의령 식문화의 첫단추다. 의령전통시장 근처에 있는 종로식당에 가니 의병공원에서 봤던 그 가마솥이 같은 포스로 앉아 소고깃국을 끓여내고 있었다. 국소리가 쇳소리를 낸다. 의병의 함성 같았다. 국냄새에 촉발된 내 허기도 그 함성 못지않았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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