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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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24 07:59  |  수정 2016-10-24 07:59  |  발행일 2016-10-24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모과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있다. 못생긴 사람을 두고도 모과 같이 생겼다고 말한다. 나무참외란 뜻을 가진 목과(木瓜)에서 유래된 모과는 못생긴 것들의 대명사로 통한다. 정말 맞는 말일까. 5월에 피는 연분홍의 모과 꽃을 보고 가을부터 겨울까지 자동차 안이나 방, 사무실 등에 모과를 바구니에 담아둔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모과에 세 번 놀란다고 한다. 못생긴 모양에 놀라고, 그 향기에 놀라고, 떫은 맛에 놀란다. 하나를 더 보탠다면 약효에 놀란다. 얇게 썰어 설탕에 절여 두었다가 끓는 물에 넣어 마시면 모과는 맛과 향이 좋을 뿐 아니라, 기침이나 가래를 삭이는 데 좋다. 모과나무는 나뭇결이 곱고 단단하면서도 가공이 쉬워 고급 가구재료로 쓰인다. 흥부전에 나오는 화초장은 모과나무로 만든 장롱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젊은 날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 공부에 열중했다. 그러나 구한말의 과장(科場)은 온갖 부정과 비리가 횡행하는 적폐의 온상이었다. 이런 실상을 알게 된 백범은 과거를 포기하고 관상과 풍수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동양 최고의 상서로 꼽히는 ‘마의상서(麻衣相書)’를 구하여 독학에 들어갔다.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부터 분석하여 관상의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 상서를 익히는 첫걸음이었다. 두문불출하며 석 달 동안 자신의 얼굴과 씨름했지만, 자신의 얼굴에서 부귀의 상은 찾을 수 없었다. 온통 흉하고 천한 모습만 보였다.

낙담하고 있던 어느 날, 같은 책에 있는 ‘상호불여신호(相好不如身好) 신호불여심호(身好不如心好)’라는 대목에서 눈이 확 뜨였다. ‘얼굴보다는 몸이, 몸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백범은 관상이 좋은 호상인(好相人)이 되기보다는 마음이 좋은 호심인(好心人)이 되겠다고 결심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백범일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는 지금 지나치게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예쁘고 잘생긴 얼굴과 날씬한 몸매를 위해 신경 쓰고 있다. 다양한 매체들 또한 외모 중시 풍조를 조장하고 있다. 얼굴과 몸매로 사람을 판단하는 폐해가 이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인간의 내면 가치와 존엄성을 망각한 태도다.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승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는 선수를 보며 우리는 열광한다.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동물도 우리를 감동시킨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학생의 자세와 눈빛도 우리를 매료시킨다.

가을이면 갖가지 과일이 쏟아져 나온다. 그 모든 것은 나름의 독특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다. 모과는 아무리 못생겨도 자신이 다 썩을 때까지 달콤한 향을 내뿜는다. 외모지상주의는 다양성이 결여된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내 마음의 밭을 잘 가꾸면서, 모과 같은 향을 내뿜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가을이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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