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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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19   |  발행일 2016-10-19 제31면   |  수정 2016-10-19
[영남시론]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 경제가 길을 잃고 있다는 진단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물론 낯선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경제에 대한 비판을 넘어 ‘비명’에 가까운 소리까지 들린다면 최근의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닐 것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가계는 가계대로, 시장은 시장대로 아우성이다. 저성장과 소득 양극화, 또는 가계부채 악화 같은 익숙한 지표를 거론하는 것이 아니다. 결정적인 것은 지금의 난국을 돌파할 ‘리더십 부재’가 아주 심각하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좌초 직전의 대한민국호(號)를 이끌고 가야 할 선장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란 영화를 뒤늦게 보았다. 하도 주변에서 꼭 봐야 한다기에 반쯤 떠밀리다시피 영화관을 찾았다. 하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강렬했다. 위기 국면에서 허드슨강에 불시착하기로 한 기장 설리의 결단, 승무원들의 책임감, 그리고 앞다퉈 구조에 나서는 민관의 초기대응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포인트가 있었다. 승객 모두를 구한 기장의 영웅적 행동에도 불구하고 작은 오류 하나라도 찾아내기 위해 그를 ‘청문회’에 세우는 미국의 ‘항공안전 시스템’이 사실 더 빛났다. 우리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감히 ‘영웅’을 청문회에 세울 수 있겠는가.

영화를 보면서 몇 번이나 ‘세월호’가 생각나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위기 국면에서 리더는 무엇인지, 또 그 리더는 한 사회에서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이런 점에서 엉망진창이 돼버린 세월호 진상조사는 결국 우리의 ‘총체적 수준’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어디 세월호뿐이겠는가. 국회 청문회도 마찬가지다. 진실규명을 위해 증인을 부르는 문제도 툭하면 ‘정쟁’이다. 진실규명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진실은폐를 위한 ‘작업’에 가깝다. 결국 ‘세월호의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며, 세월호 선장은 세월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정치권에서는 최순실씨를 놓고 연일 공방전이다. 아직도 최씨의 존재가 무엇인지, 그와 관련된 의혹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를 알 수가 없다. 최근에는 그의 딸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온갖 ‘스토리’가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 실체에 접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설리를 청문회장에 세울 수 있었던 그런 시스템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다. 아니 시스템은 있지만 이미 고장이 나버린 상태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의혹이 더 큰 의혹을 낳고, 불신이 더 큰 불신을 만들어내는 ‘비극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송민순 전 외교장관의 회고록도 논란의 대상이 돼버렸다. 노무현정부 임기 말 유엔 대북인권결의안에 대한 찬반문제를 놓고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가 쟁점이다. 회고록대로 ‘남북 경로’를 통해 북한의 의견을 듣고 ‘기권’으로 결정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기권키로 결론이 난 것인지가 핵심이다. 사실 여부에 따라서는 매우 민감한 문제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 또한 진실을 밝혀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문 전 대표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지만 이번에도 소모적 정쟁으로 확산되면서 결국 최순실씨 문제를 덮는 수단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는 매번 이런 식이었다. ‘시스템’과 ‘의지’가 반영된 진실규명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결국 뒤의 사건이 앞 사건을 밀어내면서 진실은 또 흐지부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다. 국정을 책임진 리더에게 리더의 자질과 의지가 없다면 그 공동체는 더 이상 버텨내기 어렵다. 버텨낸다 한들 기득권세력의 천하가 될 뿐이며 민생은 도탄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만큼 정치의 위상은 막중하며 리더의 존재는 공동체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는 얘기다. ‘허드슨강의 기적’은 현실이었다. 그것은 리더의 문제였으며 리더를 길러내는 시스템의 힘이었다. 반대로 ‘세월호의 비극’도 현실이었다. 역시 리더의 문제였으며 그 리더를 길러내는 시스템의 부재였다. 지금 우리는 총체적으로 고장난 시스템을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더 망가뜨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정치와 권력이 앞장을 서고 있는 셈이다. 비극보다 더한 절망이다. 정말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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