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영화 ‘럭키’ 형욱役 유해진

  • 김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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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14   |  발행일 2016-10-14 제43면   |  수정 2016-10-14
“아재는 잊어라”…‘84년생’ 꽃청춘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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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을 훌쩍 넘긴 유해진은 어느날 하루 아침에 우뚝 선 배우가 아니다. 코끝을 스치는 시원한 여름 바람 같은 배우라기보다 가랑비가 옷을 적시듯 서서히 다가와 뇌리에 오래도록 남는 배우다.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배역을 소화했지만, 유독 코미디 전문 배우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소탈한 외모에 영화 밖에서 보이는 친근한 성격과 특출난 유머감각이 부각돼 나타난 착시 같기도 하다. 그런데 실제로도 유해진의 코미디는 맛깔스럽고, 그의 감초 연기는 어디서든 돋보인다.

그런 그가 극의 전반을 이끌어가는 원톱 주연을 맡았다. 장르는 그만의 장기인 코미디다. 제대로 멍석을 깔아줬다. TV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간 덕분인지,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기대감을 드러낸 사람이 많았다. 배우의 호감 이미지가 작품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 사례가 될 듯하다. 배우 유해진을 영화 ‘럭키’의 개봉을 앞두고 만났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첫 원톱 주연
40대 킬러-30대 무명배우 삶 동시 소화
그간 몸에 밴 액션연기…연습없이 척척

여러 장르 출연에도 코미디 이미지 강해
“웃음기 거두고 과장없이 진지하게 임해
배우로 한 가지 맛보다 ‘잡곡밥’ 될 터”

“극중 주인공과 같은 32세 때를 돌아보면
열심히 살아 후회 없지만 젊음은 부러워”
현빈과 호흡맞춘 차기작‘공조’크랭크업


◆코미디 영화 현장이라 화기애애? ‘치열하다’

‘럭키’는 잘 나가던 킬러가 기억을 잃고 무명 배우와 인생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다. 이 영화는 유해진이 서로 다른 인생을 사는 두 사람 몫의 연기를 했다는 점에서 흥미를 느끼게 한다. 복수를 위해 신분세탁을 거쳐 새로운 삶을 사는 식의 전형적인 1인2역 설정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가 하면, 또 한 편으로는 의식의 차원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유해진이 맡은 킬러 형욱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무명 배우 재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의 삶을 살아간다. 기억은 잃었지만 몸 속에 남아 있는 습성은 지울 수 없는 법이다. 킬러의 본성을 찾아낸 형욱은 무명의 설움을 단숨에 날리고 액션 배우로 거듭난다.

유해진은 “액션 신을 위해 따로 연습을 하진 않았다. 현장에서 몇 차례 합을 맞추고 찍은 것”이라며 “그간 배우 생활을 하면서 액션 연기를 했던 게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다. 형욱처럼 내 몸이 기억해내는 게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킬러에서 무명 배우로 인생이 바뀌는 데 활용된 장치가 기억상실이다. 이 때문에 배우의 연기가 더욱 중요해졌다. 유해진이 웃음기를 거두고 자주 진지한 모습으로 변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럭키’는 박장대소할 영화는 아니에요. 어찌 보면 (실제 세상에선 있을 수 없는) 영화 같은 얘기죠. 어느날 내가 다른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 느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자칫 잘못해 과장된 연기를 하게 되면 꼴사납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았어요. 극을 끌고가는 인물로서 처음부터 오버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유해진은 자신이 결단코 원톱이 아니라고 했지만 상업영화의 주연을 맡은 배우가 갖는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상당하다. “아무래도 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면 씁쓸함을 지우지 못하죠. 관객들의 평가가 냉혹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현장에서 모두가 고민을 합니다. 코미디 영화를 하면 현장에서 다들 화기애애할 것 같죠? 전혀 아니에요. 정말 치열합니다.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좋은 아이템을 찾으려고 서로 끊임없이 대화하고 노력합니다. 현장 편집이 끝났을 때나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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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예능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

유해진은 오랜 동료인 배우 차승원과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 두 차례의 어촌 편에 이어 세 번째는 농촌에서 터를 잡고 벼농사에 도전하고 오리도 키우며 수많은 음식을 해먹었다. 물론 요리는 차승원이 전담하다시피 했고, 유해진은 주로 못질과 톱질 담당이었다.

예능의 파급력은 상당하다. 그는 “예전보다 팬들의 연령층이 다양해졌다”고 했다. 당연히 관심을 보이는 이도 많아졌다. “어린 아이들은 만재도 편에서 나온 생선 소개 그림을 되게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고창 편을 본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저를 ‘겨울이 아저씨’ ‘오리 아저씨’라고 가르쳐 주더라고요.(웃음) 오늘은 아침에 사우나 갔다가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 없이 차승원씨가 진짜 직접 요리하는 게 맞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삼시세끼’에 등장해 화제를 모은 유해진의 반려견이 이번 영화 ‘럭키’에 등장한 게 또 한번 이슈가 될 정도로 유해진에게 ‘삼시세끼’ 출연은 여러 모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환영하지만 개성파 배우로 충무로에서 이미 굳건히 자리잡은 유해진이 예능에 자주 모습을 비추는 것이 그다지 탐탁해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다.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더 강조하는 쪽의 얘기다. “차승원씨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지만 막상 대화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제안이 왔어요. 또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다소 복잡한 사연까지 더해져 ‘삼시세끼’에 처음 출연을 하게 됐어요. 다음에 또 할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세 번째 편에는 출연을 못할 뻔했잖아요. 그런데 막상 출연을 안 했으면 섭섭했을 것 같아요.”

그는 “‘삼시세끼’를 예능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게임을 하거나 인위적 웃음을 만들어내는 버라이어티 형식이 아닌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노출하는 리얼 장르가 부담을 줄여준 셈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영화 배우로서 저를 좋아해주는 분들에게는 종종 그런 얘기(예능 출연에 대한 비판)를 듣기도 한다”며 “연기할 때 좀 더 신중하게 된다. 노출이 예전보다 잦아지게 되니까, 예능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많이 달라야 한다는 점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낭비하지 않았던 지난 시간…그래도 젊음은 부러워

‘럭키’의 형욱은 40대에서 84년생 서른두 살 청년의 삶으로 회귀한다. 영화에선 웃음을 유발하는 에피소드가 되지만 만약 현실의 유해진이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다시 하고 싶은 건 솔직히 없어요. 맘껏 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때가 아마 한창 연극 무대에 오르며 영화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때였을 겁니다. 되게 노력하면서 살았어요. 낭비하지 않았어요. 다만 그 시절의 젊음은 부럽네요.”

유해진 역시 영화에서처럼 암담한 무명의 시절을 보냈다. 실제 자신의 경험을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었고, 누구보다 감정 이입이 쉬웠다. 그는 “무명 배우인 재성을 연기할 때는 나의 경험을 많이 살렸다. 실제 나도 영화에서 재성처럼 그 시절 옥탑방에서 살았다”며 “감독이 나에게 그런 부분은 믿고 맡기시더라”고 말했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줄 것을 요구하자 애써 손사래를 쳤다. “마치 성공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되는 게 싫다”는 게 이유였다. 겸양의 미덕이 느껴졌다.

영화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후배 이준에 대해선 “연기에 대한 욕심도 많고, 건강한 친구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인간 유해진’의 소탈함도 곳곳에서 묻어났다. “혼자서는 김치볶음밥에 달걀 프라이, 콩나물국 정도 만들어서 먹어요. 가끔 먹어서 그런지 그게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뒷동산에 올라갔다가 쓱 내려와서 목욕탕에 가는 게 평소 제 일상이에요. 이런 게 행복인 거 같아요.” 영화 제목과 같은 행운을 어디서 찾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살아가는 게 행운이다. 많은 분들이 친근감을 갖고 대해주고 배우로서 살아가는 지금을 복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도 집에서 인터뷰 장소까지 산책하듯 걸어서 왔다는 그는 스태프들과 점심 메뉴를 고민하며 껄껄 웃었다. 유명 배우의 삶도 우리네 일상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듯했다.

유해진은 남한으로 숨어든 탈북 범죄조직을 쫓기 위해 북한 형사와 남한 형사가 극비리에 공조수사에 나서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공조’ 촬영을 최근 마쳤다. 그가 남한 형사를, 현빈이 북한 형사를 맡았다. ‘럭키’에 이어 또 한번 변신을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음 행보에 대해선 “당분간 코미디 연기를 연달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배우로서 한 가지 색깔로 인식되는 건 좋지 않다. 잡곡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묻자 그는 “유해진을 얘기했을 때 ‘그 사람이 배우냐?’라는 말은 안 듣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미 그런 말을 들을 군번이 아닌데도 그는 “이 일을 하는 한…”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유해진의 다짐이 말해주는 듯했다.

글=김명은기자 drama@yeongnam.com

사진=호호호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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